빨랫돌
빨랫돌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3.03.2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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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빨랫돌로 사용할 요량으로 돌을 하나 주워왔다. 기껏 얇은 옷가지 하나 올려 비벼 빨 수 있는 크기의 납작한 돌이다. 턱하니 세탁기 옆에 자리 잡아 놓고 보니 세탁기가 가소로운 듯 내려다보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누가 빨랫돌에 손빨래를 할 것이며 설령 손빨래를 한다한들 돌멩이로 된 빨래판을 쓰겠는가. 그럼에도 부득불 무거운 빨랫돌을 세탁기 옆에 자리잡아놓은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빨래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개울가 빨래터로 가시면 덩달아 신이 나서 따라 갔다. 엄마가 자리를 잡고나면 나는 반대쪽 빨랫돌에 앉아서 빨래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룩진 옷들을 방방이로 두드리고 비벼 헹구어 내면 맑은 냇물에는 뿌옇게 땟물이 흐른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냇물은 금세 맑은 물이 되어 졸졸 흘렀다. 비비고 두드리는 횟수가 더할수록 뽀얗게 빛이 나는 옷가지들이 마냥 신기해 엄마가 요술이라도 부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작은 옷가지라도 빨아보라며 넌지시 건네주면 엄마를 흉내 내어 얼굴이 빨개지도록 비벼대곤 했다.

빨래하는 것에 싫증이 나면 송사리를 잡는다며 고무신을 움켜쥐고 일어섰다. 하필이면 왜 매번 빨래터 윗물에서 송사리를 잡는다고 첨벙 거렸는지 흙탕물 일으킨다며 야단치는 엄마의 꾸중도 고깝지가 않았다.

지금은 문명의 발달로 모든 것이 빠르게 디지털화 되어가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빠르고 편리하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요즘 신종어중에 ‘디지털 치매’란 말이 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의존해 생활하다보니 기억력이 떨어지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도 어색해진다고 한다. 또 계산기가 없으면 암산은커녕 간단한 계산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 역시도 휴대폰을 사용할 때면 번호를 하나하나 눌러서 하는 게 불편해서 단축키를 눌러서 사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휴대폰이 아닌 유선전화로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전화번호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국에는 휴대폰에서 번호를 찾아 연락을 해야만 했다. 내가 말로만 듣던 디지털 치매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더디고 불편하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때면 되도록 전화번호를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전화를 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빠르고 편리한 것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아날로그방식의 삶도 지향해 볼일이다. 조금 느리게 살아간다 해서 게으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조금 불편하게 산다고 해서 시대에 뒤쳐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능력이나 게으름이 아닌 행복의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앞만 보지 말고 주위를 돌아보며 여유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라는 뜻일 게다.

작은 빨랫돌 하나 가져다 놓고 손빨래를 해본들 유년의 즐거웠던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유로운 삶을 지향한다고도 큰소리 치지도 못할 처지다. 하지만 가끔 수돗물 졸졸 흐르게 해놓고 빨래를 할 때면 시간을 거슬러 돌아간 듯 즐겁고 평화롭다. 만약 내가 빠르고 편리한 것만 추구해 살아왔더라면 이 작은 빨랫돌에서 가족들을 오롯이 떠올리며 콧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 필진소개

충북 괴산출생. 2012년 문학미디어 봄 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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