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 울음
꾀꼬리 울음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3.1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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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겨울 끝에 봄이 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을 기다린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지나가고 생명의 씨앗들이 돋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묘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를 바랐지만, 막상 봄이 오는 것은 두렵다. 겨울에는 그러려니 했던 것들이 봄이 되면 아프기 때문이다. 봄은 그리움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당(唐)의 시인 김창서(金昌緖)는 봄의 아픔을 제대로 알았던 듯하다.

◈ 봄날의 원망(春怨)-김창서(金昌緖)

打起黃鶯兒(타기황앵아) ; 노랑 꾀꼬리 툭 건드려

莫敎枝上啼(막교지상제) ; 나무 가지에서 울지 못하게 하오

啼時驚妾夢(제시경첩몽) ; 왜냐면 꾀꼬리 울면 첩의 꿈도 깨어

不得到遼西(부득도료서) ; 님 계신 곳에 갈 수 없으니까요

※ 겨울이 추워서만은 아니었다. 내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봄을 기다렸던 것이다. 정확히 말을 하자면, 봄을 기다린 게 아니라, 봄에 올 님을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님은 오시지 않는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기다림은 원망(怨望)이 된다. 이미 원망(怨望)이 되어버린 기다림은 꿈속에서 현신(現身)한다.

봄철이면 어김없이 나뭇가지 위에 나타나 타고난 목청으로 봄을 연주하는 새가 꾀꼬리이다. 그러나 목청이 제아무리 좋은 꾀꼬리일지라도 간혹은 노래를 멈추어야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다 잠이 들어, 꿈속에서 겨우 님을 만난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시인은 왜 하필 꾀꼬리를 지목한 것일까?

목청이 좋아 소리가 곱고 큰 데다, 암수가 어울려 수작(酬酌)하며 주로 새벽에 울기 때문이다. 단순한 새소리가 아닌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소리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더욱 그 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주인공은 님 생각에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에서야 겨우 잠이 들지 않았던가?

웬만해서는 깨지 않을 주인공의 새벽잠이지만, 암수가 나누는 꾀꼬리의 새벽 밀어에는 꼼짝 없이 눈을 뜰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꾀꼬리가 방해한 것은 단순한 새벽잠만은 아니었다. 꾀꼬리 울음소리로 산산조각이 난 것은 님을 찾아가는 꿈의 여정(旅程)이었다. 아마도 주인공은 장안(長安)에 기거할 것이고, 그녀의 님인 남편은 만리타향인 요서(遼西)에 계시다.

숱한 봄을 지냈건만 오시지 않는 님을 보기 위해서는 그녀가 찾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곳은 너무나 멀다. 현실에서는 갈 방도가 없기에,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꿈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님을 만나려는 찰나에 산통(算筒)을 와르르 깼으니, 새벽 꾀꼬리가 어찌 원망(怨望)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누구라도 나뭇가지에 조용히 앉아있는 꾀꼬리를 건드려 울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봄은 꽃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새의 철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꾀꼬리는 봄을 원망(怨望)하게 만드는 심술의 새이다. 밝고 높은 음색으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가사를 울어대는 꾀꼬리 울음으로, 봄을 기다린 사람들은 님 그리움의 상처가 새삼 도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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