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박두한 ‘불통의 시대’ 속편.
개봉 박두한 ‘불통의 시대’ 속편.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3.04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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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보은·옥천·영동)

4일 대통령과 야당이 정면 충돌했다. 정부 조직개편안을 놓고서다. 정확히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관련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안을 놓고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IPTV(인터넷TV)와 SO(종합유선방송), 위성방송 등의 인·허가권과 법령 제·개정권의 이관을 놓고서다.

야당은 방통위에 이것만 남기고 다 가져가라는 입장이고, 청와대는 광솔을 빼놓고 쭉정이만 가져가서 어떻게 불을 지피겠느냐고 반박한다.

청와대는 정부 조직개편의 핵심은 미래창조과학부이고, 미래창조과학부의 핵심은 ‘방송·통신 융합’이라고 주장한다. 컨텐츠 개발에 그치지않고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유통망까지 종합적으로 관장해야 방송·통신 융합을 ICT(정보통신기술)산업의 중추로 키울 수 있다는 효율론을 강조한다.

대통령의 이날 담화에서도 이런 의지가 가감없이 드러났다. 산업전략적 논리로만 치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이다.

야당의 반대는 정치·사회적인 시각에 기조한다. 정부가 인·허가권과 법령 제정권까지 행사할 경우 방송 장악이 우려된다는 논리이다.

야당은 MB정권에서 허가한 종편 채널의 편향 보도를 지난 대선 패인의 하나로 분석한다. 인터넷방송 인·허가권을 독립기구인 방통위에서 사실상 견제가 불가능한 정부로 이관하는 것에 야당이 반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상식에 가깝다. 지난 대선에서 종편을 종횡하며 보수의 갈채를 받던 한 정치평론가가 인수위 대변인을 거쳐 일약 청와대 대변인에 발탁된 것을 보면 야당의 우려를 기우로만 보기도 어렵다.

대통령이 직접 야당과 공방하는 전례없는 사태를 보면서 우선 드는 의문은 과연 이 문제가 대통령이 배수진을 칠 정도로 절박한 사안인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도 자신의 공세적인 담화에 야당이 즉각 굴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대통령의 이날 담화는 양보를 촉구하기 보다는 직권을 행사하겠다는 선전포고를 의미하기도 했다. 예상대로 야당의 반응은 차가웠고, 정국의 장기적 교착은 피하기 어려워졌다. 삼척동자도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빌어 야당을 압박한 것은 특단의 대응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여당 일각에서는 이번 회기 마지막날인 오늘까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임시국회를 열어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여당 단독으로 강행처리하자는 얘기다. 여야는 지난해 날치기와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한 ‘국회선진화법’을 어렵게 마련했다. 날치기 처리가 재현되면 이 법은 휴지조각이 되고 국회는 다시 싸움터로 돌아간다. 미래부는 원하는 권한을 확보하고 구색을 갖출 수 있겠지만 정국은 기나긴 터널로 들어가고, 다른 다수의 법안들은 표류할 수 밖에 없게된다.

시중에서는 대통령이 비상시 국회 입법절차 없이 법령을 선포할 수 있는 긴급명령권까지 입질에 오른다. 이 권한은 교전 중이거나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할 때 발동이 가능한 만큼 실제 실행이 어렵다. 그런데도 이같은 말들이 떠도는 것은 국민들의 국정 표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반증이다.

대립이 더 길어지고 파행이 더 깊어지면 보수와 진보가 다시 맞서는 국론분열의 사태도 우려된다. 

인·허가권을 방통위에 존치시킨다 해서 정부가 업무에서 밀릴 이유도 없다. 방통위는 여권이 지배한다. 의결권을 갖는 5명의 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는다.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을 대통령이 추천하고 1명은 여당, 2명은 야당이 추천한다. 표결로 가면 결과는 누구 맘대로 될지 뻔한 구도이다. 지난 정권에서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통위가 종편을 대거 출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숫적 우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당이 인허가권 이관에 반대하는 것은, 방통위에서도 열세이지만 그나마 견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정법 처리가 지연되면서 새누리당내에서조차 청와대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모양이다. 소신없이 청와대 눈치만 보는 무기력을 자책하는 소리일 터이다.

대통령 담화로 유화론은 꼬리를 내리겠지만 이제야말로 새누리당이 나서야 할 때이다.

이를테면 미래부는 컨텐츠와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방통위는 인허가와 법령으로 미래부를 지원하는 투톱 시스템을 유지하되, 야당과 업무 일원화와 그 시기를 계속 협의키로 약속하는 식의 협상안 도출이 필요하다. 나머지 조직안을 먼저 처리하고 입장이 첨예한 미래부 건은 별도로 협상을 계속하자는 야당의 안을 기초로 절충안을 마련하고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도 타개책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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