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약속, 그리고 저버림
제주 4·3 사건, 약속, 그리고 저버림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2.2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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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대통령이 바뀌었다. 퇴임하는 대통령은 따지고 보면 재임기간에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많다. 사람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잘 넘겼다는 자찬의 말 보다는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법을 어기거나 거짓을 일삼는 행태가 먼저 다가온다. 온화한 미소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취임한 새 대통령은 5년 뒤 내 가슴에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오기를 기도한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정기총회를 마치고 첫 일정으로 제주 4·3 평화기행을 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가족도 동반했다. 어린 학생들이 그 참상을 보고 지나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4·3 유적지나 기념관 일정을 조금 줄이고 풍광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이중섭미술관과 작은 오름에 있는 제주의 불교를 살펴보고 역사공부를 겸하도록 조정하였다.

제주에는 소리 없이 제주를 알리고, 제주를 아름답게 가꾸고, 제주를 찾는 이들을 돕는 모임이 있다. 제주사랑 모임의 도움으로 한 학교의 역사 선생님께서 해설을 해주셨다. 아이들 눈높이로 설명을 해주시니 부모들은 더 이해하기 좋았다. 이동하는 중에도 아이들과 실무자는 선생님의 승합차에 타고 숨겨진 제주 비경과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의 속살을 느끼고 배웠다.

제주 4·3 평화공원을 둘러보며 제주 4·3 사건의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예술 조형물을 보며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참상에 분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분단의 아픔과 극복을 위한 노력도 다짐했다.

목시물굴은 곶자왈에 있다. 용암이 분출되며 걸죽한 부분은 흐르지 못하고 굳어 빌레나 숭이라고 불리는 너른 바위가 되고 묽어 흘러내렸던 부분은 동굴이 되었다. 목시물굴은 동백나무 숲에 이렇게 생겨난 동굴이다. 그 동굴에 숨어 있던 마을주민 40여명이 군경에 의해 살해되고 불태워졌다. 난대와 온대가 교차하는 곶자왈은 습지가 발달되어 물이 귀한 제주에는 생명수와 같은 곳이다. 호수와 연못이 참 아름답다. 오리에 걸쳐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백나무 숲은 참 따뜻하다. 곶자왈 호수에는 슬픈 이들의 눈물이 고여 있다. 동백나무 숲에는 붉은 동백꽃이 피눈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선흘리에는 낙선동성터가 있다. 주민들을 무장대와 격리하기 위해 마을에 성을 쌓고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죽창을 들고 보초를 섰다. 당시 생존자로 마을에 살고 계신 분이 나오셔서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못내 아쉬우셨는지 댁에서 귤을 한 봉지 내오셨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된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을 찾았다. 마침 유족회장께서 자리에 계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틀 동안 400여명이 군경에 의해 학살된 곳이다. 남자가 없어 무남촌이라고 불리기도 한 곳이다. 음력 12월 19일은 동네 전체가 제삿날이다.

제주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에 하나의 흐름이 있다. 노무현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사과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도 선거기간에 당선되면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엊그제 퇴임할 때까지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해 일언반구 말도 없었다. 우리 지역도 그가 선거기간에 한 약속을 뒤집는 바람에 엄청난 혼란을 겪고 여러 차례 궐기대회도 해야 했다.

제주 4·3 전개과정에서도 약속위반이 있었다. 9연대장과 무장대가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사태해결에 합의하고 전투를 종료하기로 약속했으나 우익청년의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합의는 파괴되었다. 엄청난 참상은 합의파기로 증폭되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데도 가슴에 희망이 샘솟지 않는 것은 지난 대통령의 약속을 저버린 많은 거�!碩영� 때문이리라. 부디 새 대통령은 약속을 잘 지키는 대통령이 되어 주시라. 제주 4·3 유적을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약속을 저버리면 엄청난 비극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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