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는 웃음 '툭' 건드리는 생각. 시 속에 배있는 진한 페이소스
'톡' 쏘는 웃음 '툭' 건드리는 생각. 시 속에 배있는 진한 페이소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2.14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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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활동 시인 박순원 3번째 시집 ‘그런데 그런데’ 출간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렁그렁 소 같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나를 어쩔 것인가 아,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꼭 오늘 아침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 먹는 동탯국 머리째 눈망울째 고아내는 시뻘건 그 국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이불 속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시 이른 아침의 전문-

청주에서 활동하는 박순원 시인(사진)이 3번째 시집 ‘그런데 그런데’를 출간했다.

엉뚱하면서도 측면적 시선을 지닌 시인은 2005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해 현재 대학강단에 서고 있고, 시전문계간지 ‘딩하돌아’ 편집장을 맡고 있다.

이번 시집 ‘그런데 그런데’는 4부로 구성해 60여편을 엮었다.

‘그런데’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머뭇거림과 연장의 어감이 있다. 박 시인은 ‘그런데’의 언어를 유연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려내며 웃음과 슬픔이란 진한 페이소스를 담았다.

“꿈틀을 힘주어 발음하면 틀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다”는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에서는 톡 쏘는 웃음과 툭 건드리는 생각들이 가득하다. 말장난과도 같은 시어들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게 넘기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박순원은 늘 유쾌한 사람이다. 그의 웃음은 그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파생되는 슬픔은 보편적인 것이다. 그의 시에 배어있는 슬픔은 웃음이 삶과 부딪치며 생겨난 것이다.

김종훈 문학평론가는 그의 웃음은 슬픔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고 말한다. 그 슬픔을 견디게 해준다는 면에서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웃기면서도 슬픈 박 시인의 시는 그래서 웃프다는 말로 귀결시키고 있다.

이영광 시인은 “둥글어서 슬픈 세계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인 ‘그런데’. 시인이 말하듯 ‘그런데’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그런데’는 인생의 뭇 시름들 속을 유연하게 몸 바꾸며 흘러간다. ‘그러므로’처럼 명확하지 않고 ‘그러나’처럼 단호하지 않지만, 쉽게 끝내지도 성마르게 대립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은 우리 삶의 결여와 비뚤어짐과 어긋남을 쉼 없이 들추어낸다”고 평했다. 

박순원 시인은 청주 출생으로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 '주먹이 운다'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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