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09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속 소리
오향순 <수필가>

"어르신들의 마음속 소리까지 듣겠습니다."

노인 전문병원 입구에 걸린 나무 간판에는 이렇게 다짐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마음 속까지 들여다보지 않고 어르신들의 얼굴만 바라보아도 외로움이 묻어오는데 그 분들의 마음속 소리에는 어떤 절규가 녹아 있으려나.

미용 봉사를 하는 교우(敎友)들을 돕기 위해 노인병원에 가곤 하는데 입간판뿐 아니라 병원 곳곳에 그 글귀가 적혀 있음을 보게 되었고 그걸 읽을 때마다 숙연해진다.

병원이라는 곳이 다양한 환자들이 모이게 마련이지만, 노인전문병원에는 특히 죽음의 언저리에 가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해 몇 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분들이 흔하게 눈에 띄고 사람의 몸이 저렇게까지 야윌 수 있나 싶으리만큼 핍절한 모습으로도 눈망울은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분들도 있다.

한 때 자녀들에게 한없이 넓고, 깊고, 아늑한 하늘이었을 어르신들이지만 웃음도 슬픔도 다 걷힌 표정을 하고 작디작은 공간에서 가장 원초적 본능으로 시간을 살아 내는 것이다.

머리 손질을 받기 위해 휠체어에 앉아 순번을 기다리며 무거운 침묵으로 졸고 계시는 모습을 바라보면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먹고 살기에 바쁜 자식들을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어르신들의 속내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 번은 미용봉사가 일찍 끝나서 식사수발을 해 드렸다. 내가 맡은 어르신은 침상에서 움직이지를 못하시고 턱에 풍이 들어서 계속 턱을 떠는 환자로 내 품속에 폭 안겨질 만큼 작은 체구의 할머니셨다. 그 날 점심 메뉴로 나온 콩국수와 밥을 내 딴에는 조심조심 정성을 다하며 두 가지를 번갈아 떠 넣어 드렸다. 그런데 받아 잡수시면서도 시답지 않다는 듯 무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알아들 수가 없어서 난감했다. 너무 배부르시냐고, 그만 드실거냐고 여쭈니 가느다란 팔로 강하게 손사래를 치셨다.

"만큼씩 떠 넣어, 만큼씩 떠 넣어." 소리가 거칠게 나왔다.

"많이씩 떠 넣으라구요"

"그랴, 내 밥 다 먹을 텨" 내가 떠 넣어 드리는 게 양이 차지 않아서 많이씩 달라고 하셨는 걸 못 알아듣고 엉뚱한 소리를 해서 그 어르신을 화나게 해버린 것이다. 마음 속 소리는커녕 입 밖으로 나오는 말뜻조차 알아듣지 못했으니….

'마음 속 소리.'

말로 하지 않아도 속으로 품고 원하는 생각을 뜻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 속 소리를 얼마나 들으며 살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라는 폭을 좁혀서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대상으로 해도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체, 아니 그 생각에 별 관심도 없이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내 취향대로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세심하게 귀 기울여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무심코 던진 말 때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짧은 격려 한마디에도 앞이 보이지 않던 수렁에서 빠져 나올 용기를 얻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삶이 어렵고 분주하다지만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마음을 조금씩만 낮추고 상대의 마음 속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넉넉함이 우리에게 있으면 참 좋겠다.

'찜통더위'라는 말이 실감나는 무더위의 연속이다.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라도 내 식솔들의 마음 속 소리를 헤아리며 미역냉국도 만들고 가지나물도 무치고 웰빙 저녁식탁을 마련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