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손오공의 기개 이곳서 살아숨쉬는 듯…
소설 속 손오공의 기개 이곳서 살아숨쉬는 듯…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8.0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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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도를 웃도는 붉고 메마른 황토색깔로 뒤덮힌 산
천불동 입구 광장에는 명대의 작가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소설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삼장법사 현장이 제자인 손오공과 사오정 , 저팔개를 데리고 서역으로 가던 중 바로 이곳을 지날 무렵 불산이 가로 막아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 손오공이 꾀를 내어 훠얀산의 불길을 끄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요괴 마찰녀와 그녀의 남편 우마 왕을 물리치고 삼장법사를 무사히 모시고 이곳을 통과하였다는 흥미진진한 소설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훠얀산 정상으로 뻗어 있는 낙타 길로 세 사람이 개미처럼 걸어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막히는 영상 45도 이상 되는 열기다. 사막의 후끈거리는 열기는 마치 사우나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훠얀산을 배경으로 올라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것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보기 드문 장면이다.

천불동에서 20여분 채 안되는 도로를 달려 길 옆 작은 광장에 내렸다. 화염산(火焰山)이란 비석 앞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비석 뒤편으론 붉은 훠얀산의 주름진 산골짜기가 겹겹이 흘러 내려 태양열에 불타고 있는 것 같다. 산이 푸르다는 생각은 사막에서는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개념이다. 실크로드에서 산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어졌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산의 색깔이 붉고 메마른 황토색깔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강원도 태백시 탄광촌 아이들이 시냇물의 색깔을 석탄 물로 칠했듯이 고정관념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일행을 더욱더 놀라게 한 것은 봉고차 기사 아저씨가 사우나탕처럼 이글거리는 날씨에도 내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덥지 않느냐고 신기한 듯 물었더니 약간 더울 뿐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더워도 땀을 잘 흘리지 않는다는 그의 대답에 우리 일행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영상 45도를 웃도는 무더운 사막에서 바지 안에 내복을 입고 있는 것이 더 편하다는 별난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은 다채롭고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두 군데의 훠얀산을 관광하고 투르판의 푸타오고우(葡萄溝)로 향했다. 30여분 달려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언덕으로 접어들자 포도밭 옆으로 특이한 벽돌집들이 나타났다. 구멍이 뻥뻥 뚫린 이 벽돌집은 포도를 말리는 건조장이라고 했다. 이런 창고들은 이 지방 어디서든지 쉽게 볼 수 있다. 농부들이 직접 점토를 이겨서 만든 벽돌로 두 개의 벽돌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둔 채 지그재그로 쌓는 방식이 매우 독특했다. 이러한 방식은 건조한 공기가 창고 안으로 쉼 없이 순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포도가 생산되면 벽돌과 벽돌 사이의 구멍에 막대기를 걸어 포도를 말린다고 하는데 1개월 정도면 옅은 녹색의 건포도가 된다고 한다.

이 지역의 연간 강수량이 17mm로 중국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며 '화로'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다. 투르판이 이렇게 더운 이유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아주 작은 바람이라도 부는 것을 차단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사해(死海)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지대이기 때문이다. 가오창구청의 남쪽에 위치한 염호(鹽湖)인 아이딩호(艾丁湖)는 거의 말라버린 상태이며 , 해수면보다 154m 낮다. 건조한 사막의 기후에 뜨거운 일조량으로 인해 투르판 포도는 세계에서 가장 당도가 높고 맛있는 포도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투르판 근처의 아스타나(Astana)고분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고대 가오창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포도문양의 그림이 선명한 빛깔로 남아 있어 투르판의 포도 경작은 1000년의 역사가 되었음을 예측해 볼 수 있다. 페르시아에서 아랍인들이 재배하던 포도가 실크로드를 타고 대륙에 들어와 투르판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나라 때 장안 사람들이 주연을 장식할 정도로 기호품이었고 , 시인 묵객들이 글을 짓고 노래을 했을 만큼 유명세를 떨치던 과일이었다. 장건이 황제에게 보고한 페르가나의 천마와 더불어 중국에 들여온 가장 유명한 식물인 명마의 사료인 겨여목과 중국 부유층에 상당한 인기를 모았던 포도였다.

지하 인공수로 만리 카레즈

신장성은 세계 최대의 사막인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운데 두고 북쪽은 하미와 투르판 , 우루무치로 이어지고 동쪽은 누란과 케르첸 , 호탕카슈갈이로 이어지는 오아시스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의 오아시스는 훠얀산 북쪽 천산 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땅속으로 스며서 흐르는 물을 인공으로 여러 개의 수직우물을 파 땅속으로 연결시켜 지하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를 통해 천리를 끌고 이곳까지 와서 인공 오아시스를 만들고 인공 냇물을 만들어 몇 십리씩 포도원을 조성하여 농사를 짓게 만든 것이 카레즈다.

카레즈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이슬람 세력이 이곳에 들어온 11세기경(지금의 이란 왕국)부터 전해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카레즈(karez)가 지하로 되어 있는 것은 뜨거운 태양열과 사막의 지열로 인한 물의 증발을 최대한 막기 위한 방책이다.

부득이 육로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경우에는 물 한 방울의 누수라도 방지하기 위해 물밑 바닥을 벽돌로 쌓고 콘크리트로 손질해 놓았다. 웅장한 지하 강인 카레즈(坎兒井)는 메마른 사막을 농토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카레즈는 중국 동서를 관통하는 만리장성과 남북을 연결하는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 고대 3대 대공사 가운데 하나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지하 수리공사이다. 통계에 의하면 투르판 분지의 카레즈는 1237개가 있으며 , 현재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853개이고 총길이가 5000km가 넘으며 제일 깊은 것은 90m 이상이고 길이는 보통 3~8km이며 제일 긴 것은 10km 이상이다. 지상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지하엔 만리 카레즈가 지하수로를 따라 실핏줄처럼 사막의 땅속을 흘러가고 있다.

투르판 포도농원

입구에 들어서면 계곡을 덮고 있는 포도밭엔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달려있다. 수 백 가지의 건포도를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는 길 좌우 포도 숲 아래의 식당에서 흥겨운 아랍풍의 노래 가락이 흘러나오고 있다. 포도넝쿨 아래 귀엽고 앙증스러운 위그르 소녀 아이가 아버지가 켜는 악기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서비스로 나온 포도송이를 입안에 넣으니 달콤한 향기가 입안을 감돌았다. 지금까지 맛본 어떤 포도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당도와 맛을 가지고 있다.

아 바로 이 맛이 투르판 포도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구나 하는 것을 직접 맛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같은 종류의 포도를 맛보았을 때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포도를 다 먹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양고기를 넣어 만든 신장 볶음밥은 담백하여 입맛에 맞았다. 한족들이 먹는 음식은 느글거려 먹기 힘들지만 유목민족인 하사크족이나 위그르족들의 음식은 우리 입맛에 비교적 맞는 편이다. 실크로드에 접어들면서 음식으로 인한 고통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곡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하늘색 빛의 맑은 인공연못이 나타났다. 주변 일대엔 여려 종류의 건포도를 팔고 있다. 계곡 입구에서부터 골짜기 전부가 포도밭이다. 계곡 맞은편은 비가 내리면 줄줄 흘러내릴 것 같은 푸석푸석한 암벽 산이 앞을 가로막고 강기슭엔 높이 자란 포플러 숲이 늘어서 있어 사막 계곡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맑고 투명한 천산 산맥의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사막의 오아시스가 하나의 신기루처럼 다가와 끝없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한 모금의 물과 한 송이의 포도로 천산과 투르판의 향기를 가슴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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