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44>
궁보무사 <14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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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은 율량이란 놈이 성주나 그 딸내미의 지시를 받아 꾸민 거야."
31. 소용돌이 속에서

그러다가 창리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어느 그림 앞에 시선을 딱 고정시켰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각이 진 얼굴에 부리부리하게 생긴 두 눈, 큼지막한 주먹코에 고집스럽게 꽉 다문 입, 말끔하게 내리뻗은 수염 등등이 퍽이나 인상적인 중년 사내- 바로 한벌성 율량 대신이었다.

"으흐흐……. 역시 율량이었구먼."

창리는 고개를 잠시 끄덕거리고 난 후 부하 신배미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자네, 이 자를 한 번 본 적이 있겠지"

"네.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우리 팔결성과 한벌성이 서로 사돈 관계를 맺어 사이가 한참 좋았을 때, 한벌성에서 부용아씨를 잠시 모시고 왔던 사람 아닙니까"

"으흐흐흐……. 그래, 맞았어! 율량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성품이 매우 침착하고 지략이 뛰어나서 한벌성주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몸이지. 그리고……"

창리는 이번엔 토실토실 살이 찐 사내의 얼굴 그림을 집어 들고 신배미에게 다시 물었다.

"설마 이 자를 본 적은 없겠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성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놈은 율량의 소개를 받아 그 네 놈들과 빈번히 접촉해가며 이번 일을 실제로 진행시킨 것 같다고 합니다. 한벌성에서 죄를 짓고 우리 팔결성 안으로 도망쳐 들어온 자들을 모두 불러 이 사내의 얼굴 그림을 보여주었더니 그들 가운데 딱 한 사람이 알아보았습니다. 그 자의 이름은 봉명! 한벌성 율량 대신이 가장 신뢰하고 있는 심복이라 하옵니다."

신배미가 여전히 긴장된 자세로 창리에게 대답했다.

"으흐흐흐……. 그래, 맞았어! 그러니까 결국 이번 일은 한벌성주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율량이란 놈이 성주나 그 딸내미의 지시를 받아 처음부터 계획하고 꾸민 거야."

창리는 주성이 조사해서 올린 나머지 내용들을 모두 읽어보며 이제 감을 완전히 잡았다는 듯 입가에 묘한 미소를 흘려가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런데 주성에게 가있는 네 놈들을 어떻게 할까요 놈들은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만 당했으니 자기들도 피해자라고 주장을 한다던데……. 놈들을 일단 여기로 데려와서 다시 조사해 보시는 것이……."

"아니야. 다시 조사해볼 필요 없어. 사건 주모자가 확실하게 드러나 있는 마당에 놈들을 데려와 조사해봤자 역시 똑같은 소리만 다시 듣게 될 것이 아닌가 으음. 그러나 아무리 놈들이 모르고 이용을 당했다치더라도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성주님의 귀중한 그것이 다시는 써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손상되어버렸으니, 으으음……."

창리는 이에 대해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보았다. 네 놈들이 제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본댔자 걷잡을 수도 없을 만큼 일이 너무 크게 되었다. 게다가 직접 피해자인 오근장 성주가 아직 죽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있으니 어찌 그 네 놈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오근장 성주의 불같은 성질로 보아 틀림없이 그 네 놈들은 온갖 종류의 아픔들을 골고루 맛 보다가 결국엔 끔찍하고 잔혹한 방법에 의해 죽고 말겠지

그런데, 그들이 성주님 앞에서 울부짖고 몸부림쳐가며 죽는다면, 어쩔 수없이 우리 성주님이 자기 X이 홀라당 타버린 것에 대해 분풀이를 했다는 소문이 나지 않겠는가 이런 창피스러운 소문이 나게 될 바에야 차라리 혹독한 고문 기술자로 악명이 높은 주성에게 조사를 받다가 죽고 말았다는 소문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으음음…….

창리는 조금 더 생각해보다가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위아래로 가볍게 끄덕거리며 부하 신배미에게 이렇게 다시 말했다.

"지금 당장 주성에게 달려가서 내 말을 그대로 전해주게나. 그 네 놈의 운명을 주성에게 완전히 넘겨줄 것이니 주성이 알아서 적당히 처리해 버리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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