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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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0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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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악기

                                                     박 라 연

버려져서 세포마다
대지의 온갖 기운을 먹었으므로
악기는
퉁겨주지 않아도 가끔 소리를 낸다.
젖가슴 엉덩이 긴 생머리카락
소리를 낸다.
벗은 소리를 내기 위해
벗은 소리를 벗어나기 위해
일생 내내 육체가 제 집인
비어서 살아가는 새, 흉내
내고 싶어버려진다.

'우주 돌아가셨다'(랜덤하우스중앙) 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악기(樂器)라는 밥에 대한 이야기다. 속을 비우지 않거나 몸을 서럽게 떨지 않으면 스스로 울 수 없는 것을 악기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슬픔이 고봉으로 담긴 밥그릇이다. 그걸 먹고 하루를 견디는 게 사람뿐이랴. 버려졌다. 살 속에 지수화풍(地水火風) 고스란히 담겨있는 고마운 벗의 이별이다. 불지 않아도 퉁기지 않아도 소리를 내는 자명고(自鳴鼓)의 쓸쓸함이다. 일생 내내 소리를 내기 위해, 소리를 벗기 위해 살았다. 내면이 울던 사람은 버려진 악기를 보면 온몸으로 운다. 울지 않고 이룬 삶이 있었던가. 그 사람을 시인이라고 한다.

해설 김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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