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가족이 생의 목표라면
다정한 가족이 생의 목표라면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2.11.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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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쭉쭉 뻗은 맵씨의 앳된 아가씨와 중년의 남자가 팔짱을 끼고 길을 걷는데 둘 사이가 의심스럽습니다. 여자가 손을 풀고 쪼르르 달려가 은행잎을 주워 남자의 코 아래로 흔들어 댑니다. 남자는 그런, 여자가 귀엽다는 듯, 볼을 톡톡 건드려줍니다.

뒤에선 같이 걷던 친구가 미덥잖게 생각하는 내 눈빛에 맞장구를 칩니다. 앞서가던 두 사람이 친구와 내가 식사하려는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창가에 앉고 친구와 나는 안쪽으로 앉아서 다정한 그들을 보며, 그러면 그렇지! 란 눈빛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그 옆자리 네 명은 식사분위기가 엄숙해서 상견례를 한다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종업원에게 살짝 묻습니다. “저기 창가에 두 테이블이요. 혹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어요” 종업원이 웃습니다. 맞습니다. 친구와 난 쓸데없이 남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무엇보다 세상이 순한 눈빛으로 대상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친구가 “가족끼리는 저러는 것 아니래” 라고 합니다. 저녁에 TV 시청에 푹 빠진 남편 앞으로, 김이 모락모락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잘라 “자-아,” 하면서 남편 입 앞으로 내밀었는데, 남편이 “어-어, 이 사람 가족끼리는 이러는 거 아니야!” 라고 하더랍니다. 순간 머쓱하기도 하고 왠지 민망스럽기도 하여 그냥 고구마를 내려놓고 볼일을 보는데 무심한듯 고구마를 먹는 남편이 얄미운 생각이 들고 왠지 멀어진 느낌이 들더니, 그럼 가족끼리 아니면 도대체 누구랑 고구마를 먹여주며 다정해야 하는 거야? 싶은 생각에 이르러선 화가 나더랍니다.

나중에 아내가 민망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재미삼아 유행하는 말을 던져본 것이라고 했다는데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이런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상한 시절인가 싶습니다.

금방 낳은 새끼 강아지를 핱아 주는 어미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웬일인지 강아지 중에 점박이 강아지가 한 마리 섞였는데, 강아지들끼리 얼룩 강아지 한 마리를 자꾸 물어대고, 얼룩 강아지는 무조건 어미 품으로 파고듭니다.

어미이고 자식이라는 본능적 표현이 눈물겨운 것은 얼룩 강아지가 왕따를 당하여 어쩌다 울타리를 벗어나도 어미개가 컹컹 짖으면 그 뿐, 다시 돌아와 우르렁 대는 제 형제들 틈을 비집고 가족 곁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동물의 본능이라면, 사람은 그 본능으로 부터도 너무 와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집단을 이루는 가장 작은 규모인 가족을 떠올리면, 가족은 평안과 다정함을 떠올리는 것이라야 맞습니다. 그러나 울타리가 되고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는 가정에서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통계의 기사를 접할 때면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물론 가정이 이승의 천국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천국이 아니면 지옥도 아니어야 하는데,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가 이승의 숙제일 테지요.

따라서 인생의 목표가 돈이 아니고 가족이면 좋겠습니다. 가족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면 가족이 세상에서 가정 다정한 사이여야 한다는 당위성도 생지지 않을까요. 다정함을 표현하는 것에 절대적이고 유일한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가족이어야 합니다. 가족이란 이름 앞에는 그 어떤 변명도 필요가 없습니다. 때때로 침묵도 화목함 못지않게 끈끈한 것, 그날 옆 테이블에서 입대와 유학을 앞둔 네 가족만이 표현하던 정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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