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세상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을 떠나는 모습
독약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 첫눈이 진눈개비로 내렸습니다.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내린 눈으로 거리는 한층 을쓰년스럽습니다. 빼곡했던 도시도 잎을 내려놓은 나무처럼 헐렁해집니다. 옷깃을 꼭꼭 여며도 떠날 것은 떠나고, 고해하듯 지우고 비우고 닫아걸어도 바람은 늘 등쪽에서 불어옵니다. 노을처럼 물든 잎새들 흔들리며 흔들리며 대지로 돌아가고, 길은 젖은 채 시간의 경계를 넘어갑니다.
저작권자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