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시
11월의 시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11.14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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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이 외 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을 떠나는 모습
독약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첫눈이 진눈개비로 내렸습니다.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내린 눈으로 거리는 한층 을쓰년스럽습니다. 빼곡했던 도시도 잎을 내려놓은 나무처럼 헐렁해집니다. 옷깃을 꼭꼭 여며도 떠날 것은 떠나고, 고해하듯 지우고 비우고 닫아걸어도 바람은 늘 등쪽에서 불어옵니다. 노을처럼 물든 잎새들 흔들리며 흔들리며 대지로 돌아가고, 길은 젖은 채 시간의 경계를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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