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괴아심(無愧我心)
무괴아심(無愧我心)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2.10.22 2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올해는 유난히 단풍이 아름답다. 설악산에 곱게 단풍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창밖을 서성이는 가을이다.

잠시 짬을 내어 교외로 나갔다. 사과는 빨갛게 익어가고, 나뭇잎은 어여쁘게 치장을 하는 중이다. 고개를 숙인 벼는 자식을 위해 한없는 희생만 하시다 자연으로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모습처럼 가슴이 쓰리도록 경건하다.

가을은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계절인가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식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할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든다. 저마다 풍성한 결실을 보고 있는 산과 들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자연이 계절에 순응하면서 한해의 결실을 모두 내려놓고 당당 해지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내려놓을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들의 결혼식에 즈음하여 나의 우리 안에서 키우고 가르쳤던 아들을 자연이 계절에 순응하여 결실을 내려놓듯이 나의 틀 안에서 내려놓으려고 한다.

그동안 아들을 나의 소유물로 생각하며 함부로 대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들로 키우기 위해 아이의 적성이나 인성은 무시하였다. 오직 모두가 부러워하는 듬직하고 지혜로우며 사회에서 인정받는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내가 옳다고 만들어 놓은 가당치도 않은 틀을 만들고 그 틀에 어긋나면 질책하고 책망을 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을 통해 보상받으려고도 했다. 아들이 나의 못난 모습을 닮기라도 할까 봐 더욱더 호되게 훈육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틀 속에서 자란 아들이 어느 날 어여쁜 며느릿감을 데리고 왔을 때 기쁘기도 하였지만, 염려가 됐었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으며 아직도 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들을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기보다는 사회가 지향하는 그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틀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아들이 고마울 뿐이다.

나의 바람대로 아들은 건강하게 바른 사람으로 장성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10월 28일 결혼하는 아들 심병성에게 이 글을 빌어 그동안 미안했던 마음과 마지막 아버지의 노파심을 전하려 한다.

아들아 이제는 너를 내려놓으려고 한다. 너는 너만의 나무를 키우고 또한 열매를 맺으며 모진 풍파 속에 그 열매를 지켜 내어라.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꿋꿋하게 견디거라. 살아가다 보면 비도 올 것이고 바람도 불 것이며 가뭄에 속이 타기도 할 것이다. 또한, 태풍이 불어와 너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있단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굳건하게 세우고 뿌리를 깊이 내려 너를 지킨다면 너의 품에 깃든 너의 가족들은 안전할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가족이더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가족 때문이란다.

부모 형제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가장 소중한 너의 보물임을 가장 먼저 알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버지처럼 뒤늦게 가족의 소중함을 안다면 내가 너의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한 것처럼, 내가 너희에게 살뜰한 정을 주지 못한 것처럼, 너의 마음이 부끄러울 것이다. 매사 무괴아심(無愧我心)하거라. 아버지가 이제 너를 내려놓으면서 마지막 부탁이다. 부디 마음속에 새겨 넣길 바란다.

너의 결혼식이 며칠 남지 않았구나! 네가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한 어른이 되었음을 아버지는 축하하고 또 축하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