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정신이 가라 정신?
군대 정신이 가라 정신?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2.10.1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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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장군이 울었다. 육군 대장인 박성규 제1 야전군 사령관. 그는 지난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갑자기 눈물을 내비쳤다.

그는 감사를 받는 자리에서 "(북한군 귀순사태로) 이 시간에도 혼신을 다해 근무하는 병사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부하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런데 장군의 눈물에 별로 동정이 가지 않는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군이 석고대죄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상황이 아니다.

몇 가지 짚어볼까. 우선 최전방 방어선이 그렇게 어이없이 뚫린 것부터가 화가 난다. 조성직 육군 22사단장은 현장을 찾은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그렇게 (철책을 뚫고) 넘어오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 우리 병사들을 불러다 재연해보니 가능했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우리 대북 방어선인데 지휘부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방어선을 만들어 놓았으면 그게 견고하게 구축돼 있는지 당연히 점검해 봤어야 했지 않는가. "뚫린 후에 실험해보니 뚫리더라"는 답변을 국감 현장에서 하다니 실소까지 나온다.

동해선 경비대 건물 2층에 북한군 병사가 찾아갔다가 아군에게 투항도 못하고 헤맨 것도 이해가 안 간다. 11일 합동참모본부의 해명이 가관이다. "해안경비대는 낮에 경비를 서고 밤엔 쉰다. 상황병이 내무반을 돌아보느라 아마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 고 했는데 말이 되는 소린지 모르겠다.

경비대 건물에 적군이 침범해 문을 두드렸는데 이걸 건물 안에서 아무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니. 경계근무의 원칙이 뭔지나 아는지. 동해선 경비대 보초병은 건물 안만 지키라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GOP(일반 전방 소초) CCTV가 잠자고 있었다는 것도 황당하다. 우선 그게 군용이 아닌 사제라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탄약수불(受拂) 확인용으로 설치한 게 녹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번 사태 이전에도 문제의 22사단은 숱하게 경계 근무 소홀로 매를 맞았다. 2년전에 민간인이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 장성 4명과 영관급 장교 3명이 감봉과 견책 등 징계를 받았다. 지난 3월엔 중위가 경계근무 작전 기간 중 순찰을 돌지 않고 순찰을 한 것처럼 일지에 고쳐 적었다가 적발됐다.

한 달 후에 또 같은 일이 발생했다. 하사 한 명은 경계근무 중 초소에서 잠을 자고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견책을 받았다.

경계근무를 소홀히 한 군 장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2010년 이후 경계 소홀로 징계를 받은 군 간부는 모두 20명이었는데 22사단 소속이 80%나 됐다. 그런데 전체 20명 중 14명은 모두 견책에 그쳤다. 견책은 징계 중 가장 가벼운 처벌로 일신상의 불이익이 거의 없다.

사건 발생 후 거짓으로 일관한 군의 보고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다. 상관을 속이고, 사건을 얼버무려 자리를 보전하려고 했다면 더 심각하다.

사태가 돌아가는 게 너무 코미디 같았던지 개그맨 김경진이 한마디 했다. 그는 주말 온라인 포털인 네이트 '뉴스 & 톡'에 '군대 정신 가라 정신'이라는 글을 올렸다. 자신의 군 경험을 빗대 그는 "군대에서 '가라'라는 걸 배웠다. 청소를 할 때도 '가라', 보초를 설 때도 '가라'로 하라고 했다"면서 "이번 귀순사건도 가라로 처리하려다 망신당한 대표적 예라"고 꼬집었다. 개그맨에게까지 호통받는 우리 군 장성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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