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김진오 <충청북도 미디어홍보팀>
  • 승인 2012.09.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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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이야기
김진오 <충청북도 미디어홍보팀>

옛날, 어떤 나라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서 항상 모자로 가리고 다녔답니다. 그래도 이발은 해야 했기에 비밀을 발설하면 큰 벌을 받아도 좋다는 다짐을 받고 이발사를 궁궐로 불렀습니다.

이발사는 임금님 귀를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렇지만 궁궐을 나온 뒤에도 자꾸 임금님의 당나귀 귀가 떠오르고 혼자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엄명 때문에 속만 태웠습니다.

답답증에 병이 날 지경에 이르자 결국 뒷산 대나무 숲 가운데 아무도 못 듣는 곳으로 가서 큰 소리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몇 번 질렀습니다. 이발사의 속은 후련해졌지만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온 나라에 퍼져 결국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이 알려졌답니다.

어렷을 적 들어 본 옛날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21세기 온라인 상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트위터 '대나무숲' 이야기입니다.

'~옆 대나무숲'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늘고 있는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트윗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껄그러운 이야기나 뒷 담화를 마음 놓고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 나오는 이발사가 큰 소리를 질렀다는 '대나무숲'입니다.

대나무숲 계정은 수를 혜아리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빠르게 늘고 있으며, 출판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춰낸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대나무숲은 '고등학교 옆 대나무숲'입니다. 이름만으로도 대략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갈 것인지 짐작하고 남습니다. '시월드 옆 대나무숲', 'IT회사 옆 대나무숲', '방송국 옆 대나무숲' 등 다양한 직종과 분야를 소재로 한 대나무숲 계정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내용은 단순한 상사 뒷담화부터 업계의 힘든 현실, 각종 떠도는 소문 등 다양하며 익명이 보장되기 때문에 욕설이 섞인 문장을 사용하는 등 표현의 방법이 자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트위터 사용자들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나오는 이발사처럼 '대나무숲'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는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온라인 해방구'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중들이 품고 있는 진심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만큼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대나무숲에서 정의를 외친다'는 칼럼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나무숲'에 대한 제 생각은 긍정 보다는 우려에 가깝습니다.

난무하는 광고성 글이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의 확산 등 대나무숲이 빚어낼 수 있는 사회적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통되는 속칭 '찌라시'의 내용 일부가 사실인 냥 회자되고 연예뉴스 등에 반영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슴 속 이야기를 털어 낼 곳이 없어 '대나무숲'이 필요하다면 소셜미디어가 만들고 있는 공유와 소통도 반쪽짜리라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발가벗은 채 들여다보고 보여주는 것이 올바른 소통이라고 믿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단정한 옷과 말로 자신을 드러내고 또한 그런 상대를 배려하면서 생각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도 결국 사람의 관계인 만큼 짧고 자극적인 소통에만 집착한다면 끈끈한 사람의 관계를 해치는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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