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내 아내는 못 지켰다"… 민중의 지팡이 눈물의 간병
"정작 내 아내는 못 지켰다"… 민중의 지팡이 눈물의 간병
  • 송근섭 기자
  • 승인 2012.09.19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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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청남署 이찬호 경사
아내 위암 말기 판정에 휴직

'18년 외길' 수사형사 대신

인테리어업체 일용근로자로

치료비·양육비 감당 어려워

"가장으로서 부족했다" 자책감

한 경찰관이 있다. 18년간 강력범죄 소탕을 사명으로 여기고 살았던 그는 지난 3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10여년을 동거동락 해 온 아내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미 손 쓸 수도 없을만큼 지독하게 퍼진 상태였다.

밖에서는 시민의 안전을 지켰지만 자신의 가정은 지키지 못했다. 그는 그 날 밤 차가운 계단에서 동료들의 품에 안겨 끝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찬호 형사(42·청주청남경찰서)는 지난 1994년 경찰에 입문해 '수사 형사'로 외길을 걸어 왔다.

전 청주서부경찰서(현 청주흥덕경찰서) 강력팀 형사부터 충북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 기동수사대, 경찰특공대, 광역수사대 등 가장 흉악한 범죄를 다루는 곳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새벽시간 여성 혼자 사는 주택에 침입해 수십차례 강간을 일삼은 일명 '청주 발바리 사건',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 '전국 금은방 마피아식 떼강도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 현장에 이찬호 형사가 있었다.

특히 청주 발바리 사건 때는 2만명에 달하는 용의자 중 피의자를 특정해 검거과정에서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헌신과 노력 덕분에 수차례에 걸쳐 표창과 자랑스러운 경찰관상을 받았고, 경장·경사로 특진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믿음직한 동료'로 인정 받아왔다. 그에게 경찰은 천직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경찰 계급장을 잠시 내려놓고 친구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업체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지난 8월 청주청남경찰서 용암지구대로 발령 받았으나 본인 스스로 휴직을 희망했다. "아내 간병하느라 업무에 집중도 못할텐데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 순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찬호 형사가 하루에 손에 쥐는 돈은 적게는 5만원, 많게는 10만원. 일정치 않은 일용직 수입과 휴직기간 주어지는 봉급으로 위암 말기 투병 중인 아내 간병과 아이들 양육을 해결하고 있다.

각각 초등학교 6학년·4학년·6살인 세 아이는 한창 친구들과 학원에서 어울리고 맛있는 간식 투정을 부릴 나이. 이찬호 형사는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들이 생각날 때마다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군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는 위 전체 절제 수술 후 항암 치료 및 약물 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암이 폐와 갑상선까지 전이돼 날마다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양평의 한 요양원에서 요양 중이지만, 더 좋은 치료를 받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이찬호 형사는 동료들에게 "아내가 복통을 호소할 때마다 소화제만 사다주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다"며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아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죄책감을 토로해 왔다.

지금도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경찰복까지 잠시 벗었지만, 남편으로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자주 눈물을 삼킨다. 국민을 위한 경찰로서 최선을 다해 왔지만, 가장으로서는 부족했다며 자책감을 토로하곤 한다.

이같은 마음의 상처에 간병·양육 등으로 진 빚이 현실적인 고통으로 다가오면서 누구보다 당당했던 어깨는 잔뜩 웅크러 들었다.

한 동료 경찰관은 "수천만원짜리 항암 주사를 맞으면 아내 상태가 나아질까 하면서도 돈이 없어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동료들이 도움을 줄 방법을 찾고 있지만 어려운 부분도 많다"고 안타까워 했다.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는 등 독실한 종교인이기도 한 이찬호 형사는 매일 기도를 하며 힘든 현실을 견뎌내고 있다.

"나의 가정이 다시 평화롭게, 그리고 우리 사회도 평화롭게 도와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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