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겸손으로 가르치던 교훈
엄마가 겸손으로 가르치던 교훈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2.08.2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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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올해도 한여름의 무더위가 여간 아니었다. 오랜 가뭄과 함께 불가마처럼 달아오르는 무더위를 견디기란 쉽지가 않았다. 퇴근을 하면서도 얼마나 무더운지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마에 식은땀을 훔치면서 마주보는 아이가 입술에 달라붙은 아이스크림을 할머니에게 불쑥 내밀면서 먹으라고 말했다. 반기듯이 한 모금 잘라먹는 시늉을 하면서 어린아이를 끌어안는 고맙다는 말씀이 한동안이나 멈추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가 스쳐가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지난해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고맙다는 말에서 또한 엄마가 버릇처럼 건네던 말씀이 귓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다 찾아가는 엄마가 반기면서 건네는 첫마디가 고맙다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뭐가 고맙냐고 타박하면 아무런 탈 없이 살아가는 것이 고맙다고, 가끔이라도 찾아오는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하찮은 용돈이라도 건네면 미안하다는 말씀이 또한 마땅찮다고 다그쳤다. 하지만 가난을 물려준 것이 염치없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씀은 누구도 못 말리는 버릇이었다.

엄마의 여전하던 버릇은 노환으로 입원하는 병원에서야 멈추었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기력으로 아무런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아무리 다그쳐도 아무런 말도 못하는 엄마가 고맙고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버릇은 여전했다. 그런데 하루는 어떻게 기운을 차리셨는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나도 모르게 끌어안는 엄마가 오히려 고맙다는 한숨이 한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기운을 차리는가 싶더니 다음날 아침에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씀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뱃속에서 태어나고 헌신으로 길러준 자식에게 무엇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것인지 엄마를 보내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하찮은 욕심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마음에 겸손이었다. 자식에게도 겸손을 미덕으로 살아오신 엄마가 버릇처럼 가르치는 교훈이 바로 고맙고 미안하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마약이나 다름없다. 끝없는 욕심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겸손이다. 무슨 일이든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이 없으면 아무런 발전이 없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다. 자식에게도 겸손이라는 아름다운 삶의 교훈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엄마를 보내고 한 해가 훌쩍 지났다.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에 한 해를 보내면서 무심해지는 교훈을 손자에게 고맙다고 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다시 떠올렸던 것이다.

할머니와 아이스크림을 잡아들은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고서야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스쳐가는 엄마의 그리움이 더해졌다. 엄마가 버릇처럼 건네던 말씀이 귓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리움으로 스쳐가는 엄마에게 하찮은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사람. 무슨 일이든 남을 탓하기 전에 나의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에 겸손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생전에 무심했던 불효를 용서하여 달라고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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