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와 애국
이기적 유전자와 애국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8.2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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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밤 시간 드라마를 즐겨본다. 무엇인가 함께 할 프로그램이 없는 바쁜 가족들이 유일하게 모이는 시간이다. 각시탈이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다. 광복절을 지나면서 독도문제와 겹쳐 더 가슴 아릿하게 드라마가 다가온다. 그런데 각시탈의 활약에 속 시원하기보다는 내내 친일의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초대 대통령은 일제를 찬양하는 자를 처단한 애국지사를 돕기 위한 동포들의 후원금과 독립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 이후 무력으로 집권하여 장기 독재정치를 편 한 대통령은 만주국 장교 출신이다. 또 어떤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일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으니 더욱 마음이 무겁다.

도대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죽어간 이들의 후손은 갖은 고초를 겪고 고생을 하며 살고 있고, 민족의 위기 속에 자신만 잘 살겠다고 매국을 하고 민족을 배신한 이들은 여전히 권력과 부를 쥐고 대물림을 하고 있는 현실은 왜 발생할까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인간이 아닌 동물사회학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진화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행되고, 자연선택은 '최적자'의 차별적 생존이라고 한다. 여기서 최적의 단위가 국가라면 각 개체는 장기판의 졸(卒)처럼 국가 전체의 더 큰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도 있다. 각 개체가 자기 집단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종이나 집단은 이기적 이익을 우선 추구하는 다른 집단보다 생존가능성이 크다. 결국 세상은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개체가 많은 집단이 점령하게 된다(Theory of group selection). 최적자 생존개념과 관련해서 요즘 우리사회의 1등주의를 경계하는 최재천 교수의 강연내용이 돋보인다. 지난 6월 삼성전자 사장단을 대상으로 한 "공감의 시대, 왜 다윈인가"라는 강연에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인 최재천교수는 "우리는 최적자 생존개념에 사로잡혀 1등만 살아남는다고 배웠지만 자연계를 돌아보면 생물들과 모두가 생존을 위해 도우며 공생한다."고 강조한다. 호모 심비우스(공생인류) 개념을 도입하여 "서로 공생하고 돕는 관계가 인간 사회에서도 필요하다"는 대목은 여러 번 곱씹어 볼만하다.

집단을 이루며 사는 동물들의 세계도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개체가 있고 비겁하게 자신만 살려고 하거나 집단을 배신해서 무슨 수를 쓰거나 1등을 해서 혼자만 잘살겠다는 세력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 그룹선택이론이나 다른 이론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배신자나 비겁자들이 권력을 잡고 득세하면 결국 그 집단의 생존지속성은 줄어든다. 사람이 문화전달자(밈)의 기능을 가지지 않은 이기적유전자 뿐인 한갓 동물에 지나지 않더라도 친일인사나 국민을 배신한 독재자와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그 후손의 대물림은 우리 국가의 지속성을 저해한다.

지금처럼 독립유공자 후손의 삶은 찌들고 피폐하고, 배신자의 후손은 권력과 부를 쥐고 있다면 앞으로 아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다. 독립운동가이며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섰던 애국자의 후손이 일본군 장교출신이며 해방 후 독재권력자가 된 자의 후손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각시탈을 보며 드는 속상함과 궤를 같이 한다. 친일인명사전 등재를 중지해 달라는 친일독재자의 후손에게 보내는 편지 중 한 구절이다.

"나는 귀하의 아버지는 일황에게 충성을 바쳤던 일본군이었고 내 아버지는 일제와 맞서 싸웠던 독립군이었다거나, 그대의 아버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였고 내 아버지는 민주와 통일을 위해 목숨 바친 민족주의자였다는, 또는 귀하의 아버지는 부정한 재산을 남겨 주었지만 내 아버지는 깨끗한 동전 한 닢 남겨준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사는 역사가 스스로 평가하도록 맡겨 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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