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난 낯선 인연
산에서 만난 낯선 인연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8.0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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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열대야 속에 찬물로 샤워하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몸을 말리며 잠을 청하지만 목덜미로 줄줄 흐르는 땀 줄기에 밤새 뒤척이다 새벽을 맞는다. 없는 살림에 에어컨은 언감생심(焉敢生心). 덥다고 성화인 아들들을 데리고 가까운 산을 오른다. 더위를 피한다는 피서(避暑)라는 말보다는 더위를 지혜롭게 이겨야 한다며 입 아프게 극서(克署)의 중요성을 일갈하며 산모퉁이를 돌아가지만 궁색한 변명임을 안다. 휴가를 맞아 딱히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아내 휴가와도 맞지 않아 집안에서 소일하며 저녁만 되면 찾아오는 불면증과 런던 올림픽 중계를 보느라 심신은 지쳐있다.

어르고 달래 접어든 산길에 지치기는 아들들과 별만 다르지 않다. 일 년 만이다. 작년 오늘, 휴가를 맞아 문의에 있는 작두산 능선의 팔각정에 올랐는데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며 한 시간 남짓 그곳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아이스박스에 캔 맥주와 음료수를 놓고 파는 아저씨와 나처럼 비를 피해 그곳에 든 낯선 아저씨와 셋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내일 모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낯선 아저씨의 고백에 먹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폐로 전이된 암은 왼쪽과 오른쪽 모두 퍼져 있어 완치될 확률은 지극히 낮으며 생명을 잃던가 아니면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청주 분평동에서 이곳 문의까지 매일 걸어오며 정돈된 등산로가 아닌 숲을 헤치며 정상까지 오른다는 말에 초인적인 면모를 느꼈었다. 살기 위해 일말의 희망을 품고 암 덩이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었다. 함께 하산해 내 차로 집 근처에 내려다 주며 쾌유를 빌고, 인연이 닿으면 산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이름도 연락처로 모르지만 일 년 만에 그곳에 가면 소식이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벼랑길 나무뿌리에 몸을 의지해 산을 오르는 모습은 삶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다. 곧 시집갈 딸의 손을 잡고 예식장을 들어서고 싶다는 강한 바람에 매일 산을 오른다는 낯선 아저씨의 안부도 궁금하기도 하고,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시험해 보고 싶은 사악한 이기심도 한편에 있다. 팥죽 같은 땀을 쏟으며 정상에 오르자 등산객을 맞아 물건을 파는 아저씨가 계셨다. 아는 체를 하고 작년 이맘때쯤 이야기를 하자 금세 알아보았는지 아저씨의 근황을 알려 주었다. 심각하게 전이된 암 덩이에 손을 쓰지 못하고 퇴원했다는 소식과 요즘도 자주 이곳에 오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리고 어머니 상을 당했는데 오전에 상을 치르고 오후에 다시 산을 오르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참을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지만, 건강히 급격히 나빠졌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절망 앞에 몸부림을 치듯 산을 오르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여러 이유로 산을 오른다. 몸을 혹사시켜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싶은 사람도 있고, 삶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악착같이 오르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낯선 인연에 대한 안부가 궁금해 삼복더위에 산을 오르는 사람도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팔각정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청호의 모습을 모며 여러 갈래로 나뉜 등산로처럼 각각의 삶의 실타래를 풀어놓았으리라. 이곳을 찾는 저마다 나름의 사연을 한 짐 지고 올라와 먼 곳을 응시하듯 관조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요놈, 괘씸한 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겨울에 두고 보자.” ‘남산골 딸깍발이’처럼 꼬장꼬장한 자존심을 지키며 피서를 가지 않고 버티는 옹색한 하루지만, 맑은 바람에 귀를 씻고(淸風洗耳), 그분 살아있다는 소식에 오늘하루 그저 즐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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