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올림픽이다
마침내 올림픽이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7.2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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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마침내 올림픽이다.

당장 눈앞에 경사가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올림픽 개막을 학수고대한다.

조국과 민족, 그리고 스포츠에 유난히 열광하는 국민의 특성 탓인가, 한국시간으로 28일 새벽 5시에 열리는 제30회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대한 기대로 사람들은 밤을 지새울 태세다.

개막식에 앞서 경기는 벌써 시작됐고, 사람들은 환호와 탄식을 섞어가며 올림픽에 기꺼이 몰입한다.

런던과 서울의 시차 때문에 밤과 낮이 뒤바뀔 상황임에도 사람들은 올빼미처럼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순례자처럼 사색과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며 구원받고 싶은 제주 아름다운 올레길에서 조차 생명을 위협받는 끔찍한 범죄의 공포를 지워버리기 위해 중계화면에 코를 빠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웃 아저씨의 친숙한 가면으로 위장한 추악한 성범죄자로부터 졸지에 목숨을 잃은 푸른 바다 통영의 어린 초등학생의 원혼을 차라리 잊기 위해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또 지긋지긋한 한낮의 폭염 때문에 하염없이 지쳐만 가는 육신의 피곤함을 떨쳐 버리기 위해 밤으로 숨어가며 선수들의 열정과 닮아가기를 갈망할 수도 있겠다.

거기에 5년 임기동안 무려 여섯 번이나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대통령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백성의 서러움을, 힘차고 우아하며 예술적이기까지 한 선수들의 몸동작에 실어 날려버리고 싶은 희망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또 2등은 처절한 대권싸움 보다는 그저 나와는 상관없지만 이기면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승전보에 목말라하며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목이 쉬도록 외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상 첫 은메달리스트인 송순천 옹은 "2등이었기 때문에 패배를 인정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낮춰 돌아보라는 평생의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권투 밴텀급 경기에 출전한 송순천 옹은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 당시 동·서독 단일팀 볼프강 베렌트 선수와 겨뤄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편파판정에 희생돼 금메달을 빼앗겼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송 선수에게 따로 준비한 금메달을 손에 쥐어주며 "승리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우리 국민의 이름으로 금메달을 주겠다"고 말해 가난한 나라의 설움을 대신했다.

결승전 상대인 베렌트는 그로부터 7년 뒤 대한올림픽위원회를 통해 송 선수에게 편지를 보내 "그날의 경기는 너의 승리였다"고 고백했다.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때 찾아와 "당신 주먹이 더 강했소. 그날 경기는 당신이 승리자요. 이 얘기를 꼭 내 입으로 들려주고 싶었소."라며 송 옹과 재회했다.

국가 간 경쟁체제인 올림픽은 각 국가와 국민에게는 자긍심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안겨주는 순기능이 있다.

올림픽은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는 체제에 대한 우월성과 경직된 민족 우월주의, 그리고 독재에 대한 선양의 수단으로 종종 악용되는 경우 역시 수없이 지적되고 있다.

송순천의 겸허한 고백과 이승만의 국민적 분발을 촉구하는 분노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소위 '1등지상주의'가 판을 치면서, 2등은 기억조차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올림픽의 역기능과 매우 닮아 있다.

시상대에 올라서도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이상한 나라의 메달리스트,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면 개선을 하면서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을 지적하는 외신기사는 그래서 더 따끔하다.

지금은 멀티미디어의 시대. 사람들은 이미 TV를 틀어 놓은 채 자유자재로 하던 일을 하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공부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올림픽을 통해 치부를 감추려는 잔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을 듯하다.

사람들은 이번 올림픽에서만큼은 꼴찌에게도 아낌없이 갈채를 보내면서 밤을 하얗게 밝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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