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잊어버린 정치
농업을 잊어버린 정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7.2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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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정치판에서 '농(農)'자가 사라졌다. 정치 시장에서 농업과 농촌과 농민이 상품성을 잃었다는 얘기다.

'밭도 갈고 논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 오래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즐겨 써먹던 구호다. 막강한 유권자층인 농업인들을 향한 구애요 호소였다. 농촌의 표가 권력 창출의 키를 잡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여촌야도(與村野都)라고도 했다. 여당은 농촌에서, 야당은 도시에서 표를 얻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3공 장기집권의 기틀은 새마을운동에 올인한 친농정책에서 다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농촌은 이제 더 이상 권력의 추를 좌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지난 4월 총선은 농촌이 정치무대의 주역에서 조역을 거쳐 단역으로 추락했음을 여실히 입증했다.

전체 의석이 역대 최대인 300석으로 1석 늘어났지만 농어촌 지역구는 오히려 2곳이 줄었다. 당초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은 인구 상한선에 미달하는 도시지역 12개 선거구를 7개로 통합하는 것이었지만 국회를 거치면서 힘없는 농촌지역 선거구만 2곳이 희생됐다. 각당의 지역구 공천은 물론 비례대표에서도 농업인 출신이나 농업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면 청년 비례대표 선출을 위해 룰을 바꾸거나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는데 주력했다. 흥행을 위해 신세대를 영입하고 결과가 뻔한 상대당의 거물급과 싸우게 하면서도 농업을 대변할 인물의 발탁은 외면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농촌의 정치적 위상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농가인구, 즉 농촌 유권자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우리 농촌 인구는 지난 2002년 400만 선이 붕괴된 후 10년만인 지난해 300만 선이 무너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농가인구는 296만2000명으로, 2010년 306만3000명에 비해 3.3%가 줄었다. 국민총생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5%로 크게 줄어들었다.

삶도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연간 농축산물 판매금액이 1000만원 미만인 영세가구가 전체의 64%에 달한다. 절반 이상의 가구가 본업에서는 월 80여만원의 수입밖에 올리지 못하는 셈이다. 농촌 해체화 및 공동화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고령화율은 30%에 육박하고 2인가구가 절반에 달한다.

사정이 이러니 농촌을 왕따시킨다고 정치만 탓할 일도 아니다. 농업계가 자성할 대목은 없는지 곱씹어볼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농촌인구가 줄고 있다지만 아직 300만이다. FTA 등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 고령화, 취약한 의료기반과 복지, 다문화가정 대책 등 농업문제는 늘어가고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농업계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문제를 내부에서 찾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표를 먹고사는 정치권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한목소리를 내는 집단을 두려워 한다. 농업인들이 정치권의 홀대를 받는다면 이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 상비약의 편의점 판매를 허용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절대적 찬성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막판까지 전전긍긍했다. 시행을 반대해 온 약사회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약사회 회원은 6만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을 흔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300만 농업인들은 되새겨봐야 한다.

반면 정부가 농업의 숨통을 조이는 FTA 체결을 추진하며 농업인들의 눈치를 얼마나 보았는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선 농업인구가 2%에 불과하지만 정치적 파워는 막강하다고 한다. 이들의 표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뭉쳐다니기 때문이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농업과 농촌을 지켜줄 후보를 골라 전략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유권자로서 농업인의 위상을 되찾기는 어렵다.

우선 농업인단체들의 연대가 절실하다. 정당의 공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압박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공약이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선거때마다 후보자 초청토론회를 벌이고 대책단을 만들던 과거와 달리 농업인단체의 열정이 많이 식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마다 후보들이 각축을 벌이며 갖가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농촌을 향한 목소리는 그다지 들리지 않는다. 저마다 경제 민주화를 외치지만 경제 독재의 최대 희생자인 농업을 배려하자는 소리는 듣기 어렵다. 해법은 하나다. 농업인들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실천에 나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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