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적자'와 제헌절
드라마 '추적자'와 제헌절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2.07.1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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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순간 최고 시청률 28.7%를 기록하면서 큰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추적자'의 마지막 회가 방영된 날은 공교롭게도 제헌절이었다.

지난 2008년부터 휴일에서 제외된 국경일인 탓에 국기를 다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 제헌절은 말 그대로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뜻 깊은 날이다.

모든 법의 맨 꼭대기로서의 권위를 갖고 있는 헌법이 정해진 것을 경축하는 날에 종영된 드라마 '추적자'는 '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을 시종일관 담아내고 있다.

그날 이 땅의 아버지이며, 최 일선에서 법을 지켜내고 범법자를 벌하는 경찰관 신분의 주인공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세상을 등진 딸은 법정에 홀연히 나타나 "아빠는 무죄"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아비의 두 빰을 타고 흐르는 눈물. 평범한 시민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한 법에 대해 단호히 도전하면서 더럽혀진 명예를 씻어주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던 아비의 끝없는 자식사랑에 눈물 흘리지 않을 아버지는 이 땅에 없을 것이다.

법은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이 반드시 지키면서 넘어서면 안된다는 최소한의 규정이며 사회적 약속이다.

법이 있음으로 인해 인간의 자유와 인권은 보장받으며, 법이 있음으로써 선량함과 힘없음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 '추적자'에서 표현되는 법은 돈과 권력, 그리고 범죄와 음모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면서 사람과 사람을 철저하게 차별하고 유린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평범한 여고생을,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소중한 딸을 교통사고도 모자라 살해하고 원조교제와 마약복용의 굴레를 씌우기까지 한 부자와 권력의 음모는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악마와 다름없다.

그리고 어떻게든 딸을 살려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비의 피눈물은 그런 힘 앞에서 초라하기만 할 뿐 세상 그 어느 것도 도와주거나 지켜 주지 못하고.

어디 그 뿐이랴. 거대한 권력과 음모, 그리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잔인함에 결연하게 맞설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이름은 나약하지만 숭고하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평범한 아비이면서 형사인 주인공은 결국 권력과 부를 가진 거대한 힘에, 그리고 결코 약자를 보호하지도 만인 앞에 평등하지도 않은 법에 총구를 들이대며 외롭고 힘겹게 맞서는 극한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아버지이며 형사인 주인공은 또 말한다. 어떻게든 자신을 감옥에서 빼내려는 변호인의 도움을 마다하면서 결코 자신이 심신 미약 상태가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에서 총을 쏘게 됐노라고.

"법원에 총을 들고 들어갈 때 아주 맑은 정신이었다. 내가 정신이상이었으면 법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게 되는 거다. … 난 너무도 정신이 멀쩡했다. 법이 이상한 거다. 판사는 나에게 법이 이상한 것을 설명해 달라"

재벌과 대권주자 등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힘이 나약한 시민을, 사랑스러운 딸을 둔 아비이며 형사인 평범한 시민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잔인함에 법은 너무도 무기력하다.

혼자 힘으로 단죄에 나선 주인공, 형사이며 아비인 그 역시 죄를 지었고, 상대적으로 극악한 권력자에 비해 높은 형벌을 받게 되는 드라마 '추적자'는 결코 현실이 아니다. 그저 드라마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법이 결코 만인 앞에 평등하지 못하다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고 있을 뿐,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와 구분을 구별하기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죽은 딸이 영혼만이 아빠의 무죄를 인정해 주는 비극 앞에 승자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찾아 낸 진실과 그에 대한 단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대다수 아버지들은 죄가 없다.

제헌절, 외롭게 내걸린 아파트 단지의 태극기를 내리며 법을, 드라마 '추적자'의 긴 고통을 되새긴다.

그리고 통제와 제한, 그 양심과는 먼거리에 있는 법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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