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청원 통합과 성과사회
청주·청원 통합과 성과사회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2.06.29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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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독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의 '피로사회'라는 저서가 현지에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병철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화비평가로 떠오르고 있으며 사회변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한 교수는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규율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완전히 다른 사회가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피트니스클럽, 오피스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실험실로 이루어진 사회다. (이 사회의)주민은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판옵티콘으로 상징되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만들어지는 규율중심의 사회가 자발적 주체의식의 발현을 통한 성과중심으로 변화되는 사회현상은 당연하다.

66년만에 자율통합을 이끌어 낸 청주·청원의 슬기로운 결정을 보면서 나는 우리 지역 주민이 누구보다 먼저 만들어 낸 성과사회의 찬란한 의지를 생각한다.

미군정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이 둘로 나뉘었고, 그 단절의 모순을 걷어내기 위한 시도가 이번 성사에 이르기까지 벌써 네 번째.

역사적인 2012년 6월 27일의 조바심과 마침내 통합이 결정되는 감격에 앞선 세 번의 시도는 어쩌면 민초들의 생각과는 다른 타자의식이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는 통합을 시도했거나 반대로 분열을 유지하려는 세력 모두가 기득권이라는 영역을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다는 외고집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충북도와 청주시, 청원군의 자치단체장이 이해득실을 따지기 전에 통합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이에 따라 기득권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공직자들은 지원은 하되 간섭을 최소화하는 소위 '팔걸이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그리고 민초들의 빛남, 주민들은 각각 청주와 청원 통합 군민·시민협의회를 만들어 상생발전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하나 됨을 위한 주춧돌을 마련했다.

이번 청주와 청원의 통합 결정은 2004년 주민투표법이 만들어진 이후 사상 처음으로 만들어낸 쾌거다. 그런 경탄스러운 일을 만들어낸 청원군민과 청주시민은 이미 규율사회라는 과거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성과사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먼저 실천한 사회적 진화의 표상이 될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 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는 열망이 숨어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표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하여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표식으로 대체된다"고 말한다.

민초들의 힘으로, 민초들의 자율에 의해 마침내 청주와 청원의 통합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낸 성과사회의 실천은 한 교수의 말대로 엄청난 긍정의 희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의 힘으로 역사를 바로 세웠다는 자긍심은 얼마나 우리를 들뜨게 하는가. 긍정과 할 수 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은 우리에게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이미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감과 희망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큰 부러움이 될 것이며 그런 부러움을 한몸에 듬뿍 받는 우리는 그래서 더 행복하다.

가슴 졸였던 투표상황을 지켜보다 마침내 하나가 되어 새아침을 맞는 청주와 청원 주민들의 얼굴, 얼굴들에 쏟아지는 햇살이 참으로 눈부신 오늘. 행복하다. 눈물겹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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