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배시인의 문학칼럼
박화배시인의 문학칼럼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7.14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학과 사랑
텔레비전이 일반화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서 드라마를 듣곤 했었다.

그때엔 성우의 목소리를 듣고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상상하며 나름대로 드라마를 청취했었다. 어쩌면 라디오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상상력에 의해서 작품이 완성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목소리는 맑고 기품이 있게 들리고 상대적으로 악한이나 사기꾼 따위의 목소리는 험악하고 탁하며 목이 쉰 듯한 목소리를 가졌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즈음 외화를 더빙하는 목소리도 등장인물의 외모와 성격에 걸맞는 목소리를 가진 성우가 더빙을 한다. 목소리의 중요성은 그 사람의 외모를 능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목소리가 영혼으로부터 나온다고 은연중에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리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도 목소리가 가늘다거나 쉰 듯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 잘생긴 외모는 점차로 상대방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목소리는 보이진 않지만 보이는 외모 이상으로 한 사람의 인상을 규정짓는데 큰 역할을 한다.

아마도 그 옛날 개성의 명기 황진이도 이러한 사실을 알았나보다. 알려진 바와 같이 황진이는 외모가 출중하고 시(詩)와 가무가 능하고 학문의 정도가 꽤나 되어서 당대의 한가락 한다는 남성들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남성들의 가슴에 흠모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여인이며, 우리나라의 남성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역사적 인물들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그녀의 명성은 대단하다.

이러한 황진이는 그 당시에 너무나 탁월한 재색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팔도의 명사들이 그녀의 환심을 사기위해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더욱 그녀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면벽수련을 30년 동안이나 해서 생불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던 고승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승으로 전락시키면서부터라 한다.

그래서 황진이에게 내로라 하는 학자, 고승, 고관, 장군, 시인 ,묵객들이 모여 들었고, 가부장적인 강한 남성중심사회에서 한가락 한다는 이들을 황진이는 그녀의 도도한 콧대로 품어 안을 듯 잡힐 듯하나 결코 자신의 정절을 지켜가며 잡히지 않는 절묘한 사랑의 몸짓으로 빼어난 아름다운 자태와 함께 당대의 명사들을 안달하게 하여 모두가 짧은 기간의 교유로 끝나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황진이의 이성을 대하는 태도는 아름답게 피어난 한떨기 꽃이기는 하나 결코 흐트러지지 않고 긴장감을 갖는 절제의 미였으며, 그녀는 이미 그것을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여염집 아낙이나 사대부집 마님들은 엄격한 유교의 도덕적 윤리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남존여비의 무거운 굴레를 쓰고 삼종의 도(결혼하기 전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르는 것.)를 따르면서 많은 천대를 받던 때였다. 말 그대로 남자는 존귀한 사람이었고, 여자는 노예나 다름없어 결혼하면 질투하는 것조차도 금기시 되었고 항상 남편의 말에 복종해야하는 그러한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지존 같은 남성들과 시와 문학을 얘기하고 음악을 연주하며, 가무를 즐겼던 여자 황진이를 어찌 사모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릴케의 연인 루 살로메가 이성적이며 학문적이었다면 황진이는 시와 문학, 예술과 풍류를 아는 그러면서도 이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균형 잡힌 사람이었다. 특히, 그녀는 시조를 통하여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사랑에 관한 내용을 담은 그녀의 작품은 당시 관습화되어가던 사대부 시조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고 높이 평가 되고 있으며, 황진이의 시조에 이르러서야 기녀 시조가 본격화되는 동시에 시조 문학이 높은 수준에 달했다고 한다.

부와 명예를 가진 남자도, 잘 생긴 남자도 아닌 목소리가 좋은 남자에게 반한 황진이 얘기를 다음 칼럼에서 더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