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싸움 재현될라
물꼬싸움 재현될라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2.06.1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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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극 편집국장

논두렁에서 게거품을 물며 언쟁을 벌이다 격해지면 멱살을 잡는다. 끝내는 드잡이로 번져 맞잡은 서로의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면 엉킨 두 몸은 질펀한 논바닥으로 떨어진다. 논바닥으로 떨어져서도 둘은 위아래를 번갈아 차지하며 또 뒹군다. 한참을 그러다가 힘이 빠지면 상대를 붙잡은 손을 놓고 질척한 논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원망한다. 둘은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채로 눈물을 훔치며 원망조의 중얼거림을 한다.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하늘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면서 둘은 어느새 암묵적인 화해를 한다. 이미 몸은 진흙을 발라놓은 석고상이 돼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손으로 툭툭 털어내면서 "아이고! 미안혀"하면 상대는 "뭐 자네가 미워서인가 하도 분통이 터져서"라고 겸연쩍게 응수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마을로 향한다. 그들이 떠난 자리 족히 서너덧평의 어린벼는 그들의 몸에 눌려 기가 죽어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물꼬싸움 장면이다. 다랭이논이 많았던 그 시절 윗논에서 물을 흘려줘야 아랫 논이 물을 채울 수 있는데도 윗논 주인이 물을 조금 더 가두려는 심산으로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아랫논 주인이 야심밤에 몰래 윗논 물꼬를 터 놓는다. 윗논 주인에게 발각이 되면 싸움이 벌어진다. 물꼬싸움인 것이다.

수리조합에서 관리했던 방죽이나 저수지가 있는 경우에도 비슷한 싸움이 잦았다.

가물면 수리조합에서 물을 일정량씩 내려주는데 통상 논옆으로 통하는 봇도랑으로 물이 흐르는도록 했으며, 이 물을 봇도랑에서 논으로 통하는 물꼬를 이용해 대도록 했다.

이 경우에도 윗논들이 적당히 채운 후 물꼬를 막아줘야 많은 양의 물이 빠르게 멀리 있는 아랫논까지 다다르는데 윗논에서 한없이 물을 대면 아랫논 주인들이 화를 내며 윗논 물꼬를 막아버린다.

그러면 물꼬싸움이 벌어진다. 가뭄에 물을 지키고 빼가려는 그 시절 농부들의 물꼬싸움은 '사느냐 죽느냐'의 악다구니이었다. 물론 서로의 심정을 너무나 잘알고 있어 대부분 금새 화해를 하지만 말이다.

오늘날엔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다목적댐 건설뿐만 아니라 곳곳에 방죽과 대형저수지가 있고 관개시설이 없는 천수답도 관정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아닌것 같다. 사라진 물꼬싸움이 재현될 판국이다. 봄가뭄이 심각한 지경이다. 엊그제 단비가 내렸지만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지난달 전국 평균 강수량이 36로 평년대비 36%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특히 충청지역은 10년만에 최악의 가뭄이라고 한다. '가뭄' 단계를 넘어 '매우 위험'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예년의 경우 늦어도 6월 10일을 전후해 모내기가 종료되지만 올핸 아직도 모내기를 못한 논이 많단다. 이미 심어 놓은 모도 뿌리 활착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파종기 밭작물 생육 부진 또한 문제다. 일년 농사를 망치게 생겼다. 이대로 간다면 수확기 농산물 값이 천정부지로 뛸 것은 뻔한 일이다. 물꼬싸움이 벌어질만한 형국이다.

이를보면 우리의 물 관리 수준은 아직도 안심할 단계가 아닌듯 하다. 여전히 강우량이 부족하면 쩔쩔매야 하니 말이다. 주먹구구식 치수관리 실상을 또 한번 확인한 것이다.

우선은 정부가 관련예산을 긴급편성해 지하수 관정개발, 간이보 설치, 농산물 비축 물량 조절 등 급한대로 비상수단을 동원해야 겠지만 물관리와 기상이변 대책 등 이상기후에 대비한 항구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기후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단기 대책으로는 해마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꼬싸움이란 단어조차 고전이 된 최첨단시대임에도 하늘만 쳐다봐야 하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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