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사랑
찔레꽃 사랑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6.1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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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이제 한달 후면 조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연인이 된다. 앞날에 대한 공연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머리가 띵하여 하소리 뒷산을 향했다.

신록의 계절 6월이란 이름에 걸맞게 짙은 녹음이 온누리에 가득한 조용한 숲속이었다.

산을 걸을 때마다 느끼지만 조화로운 자연의 섭리에 감탄한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여러 종의 나무와 풀들이 아무 불평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왜 우리 인간사회는 이렇게 살아가지 못하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욕심 때문이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없는 자는 부족한 것을 채우려 안간힘을 쓰며 살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벗어나 등산로를 따라 비탈길을 오르는데 산자락과 밭두렁에 만개한 찔레꽃이 저무는 노을에 붉게 물들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자연이 준 멋진 선물과 하나 되니 모든 상념이 사라지고 머리도 날아 갈듯 맑아졌다.

찔레꽃 사잇길을 걷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주 오래전 아버지께서 당신의 회갑 날에 부르셨던 가요 '찔레꽃'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가 노래하는 것을 본 것도 들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고 이젠 더 이상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게 되어 더욱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찔레꽃 설화 속에 나오는 부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마치 내 아버지의 모습처럼 그려졌다.

아주 먼 옛날 고려가 중국 원나라의 지배를 받은 시절의 일이다.

어느 산골 마을에 찔래와 달래라는 두 자매가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두 자매는 아버지 병을 치료할 약초를 구하기 위해 깊은 산속에 들어갔다가 그만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원나라로 보낼 공녀(貢女)를 찾고 있던 관리의 눈에 띄어 언니 찔래는 잡혀가고 동생 달래는 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병든 아버지는 집을 나와 딸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곳곳을 헤매다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 후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찔래는 다행히 마음씨 좋은 부잣집으로 가 살게 되었지만 언제나 병든 아버지와 동생 생각으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고 나날이 쇠약해 결국에는 몸져눕게 되었다.

찔래의 병은 백약이 소용없었다. 마침내 찔래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은 한달 동안 고향집을 다녀오라는 허락을 해 주어 드디어 찔래는 꿈속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찔래가 고향을 찾아갔을 때 살던 집은 폐허가 된지 오래였고 가족의 소식을 전해들은 찔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여기저기 산속을 헤매다 추운 겨울날 길가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 찔래가 아버지를 찾아 헤맸던 곳곳에 하얀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이 이 꽃을 찔레꽃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저녁놀이 붉게 타오르는 오늘따라 이 슬픈 설화가 왜 내 가슴속을 울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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