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년의 신입사원
50대 중년의 신입사원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2.05.3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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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지금 나는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그런 어색함으로 맞는 유월, 날씨마저 덩달아 흐렸다 개이고, 또 때 아닌 우박이 쏟아지면서 농민들을 비탄에 젖게 하는 계절에 나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지난주 저는 충청논단에 '낙화유감'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별리(別離)를 핵심 키워드로 삼아 애틋한 헤어짐을 작심하며 써 내려간 글에서 눈치 빠른 옛 동료들은 나의 떠날 준비를 이미 읽어 냈습니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놓고 짐짓 공공성과 사회성을 염두에 둔 듯 능청을 부린 글에서 나 스스로도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사 맺은 인연, 아무런 느낌 없이 감회 또한 없이 훌쩍 떠나는 것은 너무 무심하지 않은가 라는 일말의 참회가 없지 않았겠지요.

한번 떠났던 자리에 돌아 왔다가 다시 떠나고, 또 떠났던 자리에 다시 돌아오게 된 기막힌 여정에 어찌 윤회라는 심오한 뜻을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마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똑바로 향하지 못한 채 자꾸만 휘돌아 사는 일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고백합니다. 그동안 나는 충청논단을 통해 어줍지 않은 내 넋두리를 아주 가끔 늘어 논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시사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럿이 공감하는 이야기인 듯 미욱하기 그지없는 포장을 마다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는 일과 사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은, 즉 인생에서의 변화는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 어쩌면 앞으로는 더 이상 기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회한 끝에 설핏 잠이 들고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꿈을 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오르내리다가 깊은 절벽으로 떨어지는 꿈이었는데, 꿈이라서 그럴까요. 전혀 다치지는 않았고, 다만 자전거 바퀴살 몇 개가 부러져 누군가가 벌써 고치고 있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추락이 새로운 시작점에서 더 크게 자라길 바라는 심리의 무의식적 발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를 위로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꿋꿋하게 언론을 지키고 있는 선, 후배 동료기자들의 올곧음에 새삼 고개를 숙이며 새벽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은 지금 굳이 이러한 변화가 나를 얼마나 살찌우게 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데 이바지 할 수 있을지 아직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50대 중년의 나이에 신입사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은 설레는데, 이런 변화 역시 지나친 자기 집착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흔들림 없이 한 길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세상 모진 풍파를 견뎌내며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끈기와 인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자의 길을 떠난 나는 부끄럽기 그지없고, 그래도 든든하게 남아 있는 선, 후배 동료 기자들의 고귀한 뜻은 부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타고 비엔날레의 세계에 뛰어든 내가 어리석다는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명제에 충실하면서 그 변화의 물결이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풍요로움, 그리고 미래 희망을 담아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혜를 갖추는 일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덤비다간 일을 그르치기 십상일터이니 더욱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지금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대신 창조적인 발상으로 대안을 찾아내며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지요.

그런 생각으로 신입사원이 되어 맞는 50대 중년의 6월은, 그 짙푸른 녹음의 시작은 비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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