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과만이 능사가 아니다
폐과만이 능사가 아니다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5.3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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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서원대가 6개 학과를 폐과시킨다는 소식에 소설가 이외수 씨는 "대학을 차라리 취업대기소라고 간판을 바꾸는 건 어떨까요"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대학구조조정에 맞물려 정부지원제한 대학으로 몰린 대학들은 자구책의 일환으로 인기가 없거나 취업률이 낮은 과를 앞다투어 폐과시키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추진하는 부실대학 퇴출경로를 보면 정부지원제한 대학으로 선정됐음에도 이후 절대지표 2개 이상(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확보율, 교육비 환원율 ) 미충족 시 대출제한 대학으로 묶고 이후 대출제한 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을 실사해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한 다음, 감사를 실시해 이에 충족하지 못한 대학은 이행명령 및 폐쇄계고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퇴출한다는 것이 교과부의 입장이다.

교과부가 지난 2월 23일 보도 자료를 통해 밝힌 '2013학년도 학자금대출제한 대학 평가지표'를 보면 10개의 평가지표 중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이 평가지표의 50%를 차지한다.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할수록 지방소재 대학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대학서열이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지방대학들이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비해 취업률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재학생 충원율 또한 지방대학에 입학해도 편입학을 통해 수도권 대학으로 재진학하는 경우가 흔하다. 수도권으로 우수학생들이 몰려 지방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지방대학이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지표를 근거로 부실대학을 선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잣대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나라 대학의 문제는 사립대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과 등록금의 10% 이상을 반드시 장학금으로 주도록 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일부 사학 재단은 법정 전입금은 내놓지 않으며 등록금을 적립금으로 쌓아 장학금 지급보다는 대학 건물 세우는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하며 족벌경영을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대학구조조정은 국립대의 비중을 높이고 부실하게 운영되고 전체 학생이 줄어들어 충원율을 채울 수 없는 사립대학을 통폐합시켜 국립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학은 다양한 학문의 영역별 특성이 존재함에도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무시하고 취업률의 평가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과나 예술 관련 학과는 서원대처럼 존폐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철학과가 하나둘 사라지고 신입생이 많이 모이고 취업이 잘되는 간호학과나 물리치료학과 등을 신설해 취업률을 높이는 대학구조조정이 되어선 안 된다.

대학은 대학 본연의 가치가 있다. 90년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기업의 자본이 대학에 투입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공급하는 곳으로 대학의 기능이 바뀌었다고 하나 실용적이며 기능적인 부분만 강조하다보면 대학은 말 그대로 취업 대기소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어느 대학처럼 철학과와 국문과를 통폐합해 문화콘텐츠학과를 신설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다. 학생의 취업률은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문제이며 이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건 정치권의 책임과 몫이 더 크다. 물론 시대조류에 맞는 학과가 생겨나고 그렇지 못한 학과가 사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중고등학생이 시험에서 예체능 비중이 낮아졌다고 체육시간과 미술시간을 전용해 영어 수학 공부만 시킨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학과를 폐과시키는 것은 돌아다 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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