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의장국의 원양어선들
OECD 의장국의 원양어선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2.05.22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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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뉴질랜드는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군을 행사하는 배타적경제수역(E EZ)에서 외국 원양어선의 조업을 허용하는 흔치않은 국가이다그만큼 근해에 물고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 어선들은 사전에 뉴질랜드 정부와 계약하고 돈도 내야한다. 어획량이 제한되고 뉴질랜드가 제시하는 각종 안전기준도 지켜야 한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우크라이나, 도미니카 등의 어선이 뉴질랜드 EEZ에서 조업한다. 그런데 사전에 약정한 각종 기준을 어겨 뉴질랜드 정부의 골치를 아프게하는 문제아들이 한국 어선이다. 지난 2006년부터 뉴질랜드 정부가 어장 관리기준 위반을 적발하고 어선을 몰수한 사례 20건 중 10건의 대상이 한국 어선이다. 같은 기간 선박 안전기준을 어겨 어선을 억류한 21건 중 13건을 한국 어선이 차지했다.

한국 어선의 일탈은 어선 및 어장과 관련한 기준을 위반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한국 어선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선원 32명이 항구에 정박 중인 배에서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들은 선상에서 지속적인 성추행과 폭행, 저임, 체불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이 이슈화하고 오클랜드대학 아시아연구소가 진상조사에 나섰다. 뉴질랜드 노동부도 어선 내 인권탄압과 노동착취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결과보고서가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욕설과 폭행은 일상적이었고 침실과 샤워장 등에서 한국인 간부선원들의 성추행이 다반사로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한국에도 전달돼 국내 인권단체가 피해자들을 대신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난 4월 성희롱 행위가 발생한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면서도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등 이유를 들어 진정을 기각했다. 혐의를 부인하는 한국 선원들을 중심으로 조사했고, 피해자인 인도네시아 선원들에 대한 조사는 (소재 파악이 안돼) 진술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겉핥기에 그쳤다.

반면 뉴질랜드 조사반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선원 32명 전원울 포함해 관련자 72명을 직접 대면 조사했다. 현지를 떠난 선원은 인도네시아까지 찾아가 인터뷰했다. 뉴질랜드 조사 결과를 더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제3국인인 사건의 진상조사에 뉴질랜드 정부가 해외 출장까지 하며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뉴질랜드가 내놓은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한국 어선의 노동착취와 기준 미달의 노동조건에 대한 의혹이 진보적이고 공정한 국가라는 뉴질랜드의 평판에 해악을 끼쳐왔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마디로 한국 어선이 자기네 수역에서 인권유린을 자행해 자국의 평판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다. 제3국 선박에서 제3국인간에 벌어진 인권문제까지도 자국의 명예에 결부시켜 대응하는 태도는 가해 당사자이면서도 덮고가기 바쁜 우리를 더없이 부끄럽게 한다. 이러고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의장국을 자처하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뉴질랜드에서는 수자원 보호를 위해 외국 선박의 조업을 이제 중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때문에 툭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한국 어선들은 다른 외국 어선들의 눈총을 받는다고 한다. 뉴질랜드 국내 여론에 명분을 보태준다는 이유에서다. 이래저래 국제적으로 천덕꾸러기가 된 선박의 소유주는 국내 수산업계를 대표하는 대기업이다. 한 선박은 노동여건에 대한 뉴질랜드 정부의 조사를 거부했다가 외국인 선원 고용 허가가 취소되기도 했다. 피고용인에 대한 군림, 밥먹듯 하는 규정 위반, 걸리면 일단 오리발, 조사는 거부하고 보는 행태들은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 아니던가. 하긴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멀쩡할리 없다.

외국인 선원들을 짐승 취급한 우리 선원들의 야만적 의식도 짚고 넘어갈 문제다. 아무리 생각해도 월급 30여만원에 팔려온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학대를 해도 고향에 두고온 가족들의 생계에 구속돼 차마 배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야비한 계산도 깔려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19세기 말 이민을 시작한 우리 조상들이 당시 남미와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백인 농장주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인터넷이라도 찾아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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