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탈출기
나의 탈출기
  • 김덕희 <이야기할머니>
  • 승인 2012.05.08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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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김덕희 <이야기할머니>

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80년대 중반 나는 사회봉사에 뛰어들어 1인 다역으로 몸은 고달프지만 하루하루 마음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새천년이 시작된 지난 2000년 4월 첫 손주를 보면서 나는 여지없이 아기 돌보미가 되고 말았다. 그때 내 나이 막 쉰 고개를 넘어 섰으니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였다. 그렇게 시작하여 한꺼번에 손주들을 셋씩이나 돌 봐야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동네 사람들은 아예 나을 두고 안나의 집(안나 : 세례명) 원장이라고까지 했다.

자식들에게 제대로 해 준 것도 없으면서 먹고 살겠다는데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해 두해 해를 거듭할 수록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출구 없는 방에서 헤매는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다. 오랜 신앙생활로 종교적 수양의 자세로 버텼지만 쉽지가 않았다.

결국 무릎관절 수술을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갑상선까지 찾아와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게 되었다. 그냥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특단의 처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찾아간 곳이 주민센터 1인 1책 쓰기 교실 이었다. 그 무렵 청주시에서는 직지 찾기 일환으로 1인 1책 쓰기 운동이 2년차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했던가. 정말 말도 안 되는 글을 써서 회원들과 함께 읽으며 채찍질하여 그나마 읽어줄 만한 글로 변화 시키곤 했다. 그 이듬해(2009) 강사선생님은 우리에게 여성 백일장에 한번 도전해 볼 것을 권유 했다. 나로서는 늦깎이로 열정 하나 믿고 글쓰기 교실을 찾아간 터에 그 어떤 결과보다는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단 하루라도 일탈 하고픈 심정에서 마음은 연초록 새 잎새가 바람결에 팔랑이고 아카시아꽃 향기 은연하게 풍기는 삼일공원으로 먼저 달려갔다.

옛말에 '삼년 가뭄에 하루 쓸 날 없다고 백일장 전 날부터 내리기 시작 한 봄비로 끝내 삼일공원이 아닌 중앙초 강당에서 백일장을 치르게 되었다. 날씨 탓인지 몸은 천근이요. 눈까지 침침하여 머릿속은 온통 하얀 도화지 같았다. 일찌감치 작성한 원고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운의 여신께서 도와 주셨는지 뜻밖에도 입선했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그렇게 환갑이 넘은 나이에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내 몸에서 제 집처럼 자리 잡고 있던, 뭔가를 잘못 먹고 속에 얹혀 삭히지 못하는 심한 체증 같은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그 자체가 기도요, 삶이 되었다. 2009년에는 부족하지만 나만의 책 '나는 너를 소리쳐' 산문집을 출간 했으며 올 6월쯤에는 시집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글은 꼭 많이 배운 사람만이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 그 자체가 한권의 책이 될 수 있으며 더욱 일기를 계속 써 왔다면 조금만 손을 보아도 멋진 자서전이 될 수 있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사과 나무을 심겠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하며 인생후반기를 멋지게 보낼 수 있도록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그런 고민은 장수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필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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