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과 광우병, 그리고 실천이상비판
단식과 광우병, 그리고 실천이상비판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4.26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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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취재2팀장(부국장)

칸트는 말한다. "인간은 곧 그의 자유와 자율의 힘에 의해 신성한 도덕 법칙의 주체이다." 그리고 또 "이성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순수하고 실천적인 법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다. 그러므로 도덕법칙은 다름 아니라 순수 실천 이상, 다시 말해 자유의 자율을 표현한다"고.<칸트, 실천이성비판>

1991년 다시 출범한 청주시의회 의정 사상 초유의 '의원단식 농성'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요즘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지금 기자다. 그러므로 나는 늘 특종에 목말라하고, 낙종을 두려워하는 존재임을 잊고 지낼 수 없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시정 질의나 행사에서 말이 되어 전해지는 '시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불철주야 수고하시는 언론기관 관계자 여러분!'이라는, 그 느낌표까지 붙은 상투적 문장에 내가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극단의 사태를 만든 일의 본질은 무엇이며, 진실은 어디에 있고, 잘못은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저지른 것인지는 기자로서의 지금 나에게 가장 커다란 화두임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철학자 강신주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해석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의원이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은 자연인으로의 자유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유가 있음으로 인해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그의 자유는 다시 공무원의 자유로 이어지면서, 그 역시 책임은 무겁다.

그것의 시작이 비록 지금은 역사의 뒤 안으로 물러난 전임시장 시절에 있었던 단초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한데, 지금 단식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시시비비를 반드시 가리고야 말겠다는 극단의 선택은, 그 당시 의회는 무엇을 했을까 라는 의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소위 비하동유통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해 의원의 단식이라는 극단이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과연 청주시정과 청주시의회 의정에 얼마만큼 순기능이 될 것인지, 그리고 그 진정성은 시민 모두의 우려에 대해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이 정도로 악화되고 있고, 또 주변의 만류와 함께 저의가 궁금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험악해지고 있음에도 출구가 없다는 것은 문제다.

지금이라도 문제가 되고 있는 서류를 접수한 누군가가 결연히 나서 잘못을 인정하고, 그 역시 곡기를 끊으면서 단식 중단을 호소할 수는 없는가. 그래야 시민의 공복으로서 당당하고 떳떳한 일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나는 냇가를 거닐다 물위에 비쳐진 내 그림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무심결에, 단식이 벌어지는 지금의 사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르시스는 제 모습에 감탄을 하다가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익사했다. 단식을 마다하지 않는 일이 나르시스를 닮아 자기도취에 빠진 것은 아닐 터인데. 그는 과연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이며, 또 무엇을 본 것인가는 여전히 궁금하다.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책임 묻기는 도덕적이지 않다. 무례한 일이다.

그 명제는 존엄한 생명을 위협하는 단식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한 쪽이나, 과오를 지난 일로 여기며 책임을 회피하는 그 누군가의 단초를 제공한 공직자 모두에게 있다. 그리고 그런 극단은 위험한 일이며 정치적으로도 합당하지 않다.

내일은 충무공 탄신일이다. "죽기를 마다하지 않으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는 충무공의 일갈은 목숨이 아니라 자존심임이 지금 더 어울린다. 이쯤에서 멈출 일이다.

그런데 다시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는 광우병 소식이 느닷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처는 미적지근하다. 누군가에게 책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나친 자유를 줬거나, 자유=책임의 실천이성은 너무 어려워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가는 봄날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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