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무한도전 왜 안해?
아빠, 무한도전 왜 안해?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4.2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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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PD님 이제 제법 노동자의 티가 납니다." 객쩍은 농담에 그가 웃는다. 금요일마다 상경투쟁을 해 검게 그을린 모습에서 영락없는 노동자의 품새가 느껴진다. 집회현장에서 마주치거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나는 기자는 늘 대하기 불편한 존재였다.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선입견 탓이다. 지역 현안에 대해 기자회견을 할 때 TV 카메라가 없으면 왠지 허공에다 주먹질하는 것처럼 공허함마저 든다. 집회와 시위에는 TV 카메라가 돌아가야 맛이 난다. 그래야 구호에도 힘이 실리고 분위기도 산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취재에 전념해야 할 그들이 길거리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

민중가요를 부르고 결의에 찬 구호를 외치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를 다짐하는 모습에서 늘 주변인으로만 느껴지던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저들이 다시 카메라를 메고 마이크를 들면 길거리에서 발악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진 않겠지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MBC, KBS, YTN, 국민일보 등이 파업을 전개한 지 길게는 석 달에서 짧게는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라는 노조의 요구에 방송사는 기자해임과 보복성 인사 등으로 맞서고 있다. 급기야 신임기자와 PD를 공개 모집하고 있어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대통령 측근을 임명한 것부터가 화근이었다. 언론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현 정부에 편파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권력을 감시·견제하는 고발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등의 일련의 사태가 사건을 키워왔다.

노조 측에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보도의 자율, 독립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측은 방송사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는 노사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초유의 방송사 파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다.

4·11 총선 과정에서 방송사 파업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정책검증이 실종됐고 총선 기간에 불거진 '민간인 불법사찰'은 총선판도를 뛰어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 사항임에도 심찼ㅻ재도 없이 그냥 묻히고 말았다.

반면에 김용민 노원갑 후보에 대한 막말 파문은 전국 이슈로 확대되어 보수층을 결집하는 기제로 사용되었다. 당선 후 탈당한 김형태 의원과 문대성 의원의 사안을 놓고 보면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사태의 주된 원인은 사장 선임의 구조 개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장 선임에 정치권력의 힘이 작용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편성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을 개선하지 않고는 방송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4·11 총선에서 야당의 패배는 언론사 노조에 큰 충격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로인해 파업사태의 장기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과반의석을 점유한 새누리당이 현 정권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낙하산 사장 퇴진에 동의해 줄 것을 기대하는 여론 또한 없지 않다. 언론의 독립성 확보는 여·야를 떠나 대선과정에서 주요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라 정치권이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방송사 지배구조의 민주적 개선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방송사 구성원, 시민사회 등이 관심을 둬야 할 사항이다. 정파적 이념을 초월해 권력 감시와 견제, 제작·편성권의 독립 등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민의 수렴 기능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토요일 오후 TV 채널을 돌리던 아들이 "아빠, 무한도전 왜 안 해?"라는 생뚱맞은 물음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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