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의 픽션
허경영의 픽션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2.04.22 2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이런 세상은 어떨까.

학생들이 시험을 칠때 자기가 가장 잘하는 과목 1개만 보도록 한다. 결혼하면 무조건 1억원을 준다. 대학 등록금을 100% 지원한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취업을 알선한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한다. 지금의 국회의원들과 정당제도를 없앤 후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만든다.

또 전국을 서울(서울·경기), 충강도(충청·강원), 경전도(경북·전북), 전경도(전남·경남) 4곳으로 통합해 지역 감정을 없앤다.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한다. 모든 직접세를 없애고 국민들에게는 1인당 15억원을 조건없이 준다. 이와함께 2025년 아시아, 2026년에는 북한과, 2030년까지는 세계를 통일한다.

이런 세상이라면 대한민국 부모들이 가장 골머리 아파하는 사교육은 없어진다. 성적 때문에 20~30층 아파트 옥상에서 자기를 포기하는 청소년도 없어진다. 내집을 마련할 자신이 없어 결혼을 포기하는 연인 또한 없게 된다. 대학을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갈 수 있는 세상이 된다.

취직을 못해 가출하거나 자살을 택해 부모 마음을 천갈래 만갈래 찢어놓는 자식도 없게 된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원정출산을 하는 그릇된 모정이 사라진다. 국회의원들은 당론을 따를 필요가 없어 소신 정치를 펼 수 있다. 전국이 4개 지역으로 재편되면서 지역 감정을 가지고 싸울 일도 없다. 판문점에 위치한 유엔본부로 인해 남북통일은 물론 한반도가 주도적으로 세계평화를 이끈다. 2030년에는 세계가 하나가 되는 'We Are The World'를 이룰 수 있다.

이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한 사람은 믿고 있다.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허경영이 꿈꾸는 세상이다.

지난 97년 15대 대선에 나서면서 황당한 공약으로 9만6756표를 획득한바 있는 허 본좌의 꿈이다. 그런 허경영이 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자 트위터 등 SNS가 뜨겁다.

최근 허경영이 내놓은 대선 공약에 대해 "공약 참 좋다. 그 꿈이 현실로 됐으면 한다. 허경영은 표절은 안한다. 창의적이다. 요즘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를 아는 절묘한 센스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는등 수많은 네티즌들이 호응을 한다.

소설가 이외수씨가 최근 트위터들과 1문 1답을 나누다가 대선과 관련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선 야권후보? 허경영만 안나온다면…"이라고. 이외수 작가도 허경영의 기행과 황당무계함을 알고 있지만 국민들의 그에 대한 반응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이 모두 거짓이고 허세임을 알면서도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그의 허풍이 기존 정치를 희화화하고 싶은 대중의 욕구를 긁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허경영의 황당무계가, 기행이, 허풍이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뱉는 말은 그야말로 픽션(fiction)이다. 사실이 아니고 가능성도 없다. 단지 상상에 의한 창작에 불과한 허구다.

더욱이 그는 2013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여서 법률적으로 출마자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욱 황당무계하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이 그의 픽션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허경영의 황당무계가 먹히는 사회라는 것인데 그런 사회가 더 황당하다는 생각이고 보면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왠지 씁쓸하다.

사교육,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 청년실업 등 수많은 고질적인 사회문제 중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이 없다.

이를 진정성이 결여된 정권과 정치 때문으로 보는 국민들은 그저 한번 웃어넘길 허풍임을 알면서도 허경영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온통 픽션이라는 생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