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은 겸손해야 보인다
봄꽃은 겸손해야 보인다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4.1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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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총선을 얼마 앞두고 공주 석장리 유적을 둘러보았다. 강가에 시원한 잔디밭이 그저 좋았다. 아이들은 공부 부담 없이 마냥 뛰어 놀았다. 해설사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봄날은 그냥 걷는 게 좋다. 박동진 선생의 중고제 판소리 전수관에 들러 잠시 선생의 일생을 돌아보고 판소리 예수전을 들어보았다.

존경하는 선생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눈길은 정원의 매화에 꽂힌다. 공산성은 한바퀴 산책하는데 시간도 알맞고, 볼거리도 많고, 유유히 흐르는 저 강물은 보기만 해도 빠져들 것 같아서 좋다. 길가에 개불알풀꽃이 지천이다. 저 앙증맞은 보라색꽃은 이름을 민망하게 달고 나와서 우스개꽃이 되었다.

점심은 밤이 많이 나는 고을이니 밤으로 모든 음식을 하는 집을 찾아가자. 밤피자, 밤된장국, 밤잡채, 밤막걸리, 밤돌솥밥으로 해서 후식은 생밤으로 마무리 한다. 아이들은 밤피자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어른들은 밤막걸리가 최고란다. 한옥마을과 공주박물관, 무령왕릉이 모여 있어 역시 점심 먹고 산책하고 둘러보기 마침맞다. 청주에 이런 한옥호텔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

총선이 끝나자 멘붕이란 말이 유행한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멘탈붕괴란다.

정권심판을 부르짖던 사람들은 야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얻어 정권의 부조리함을 바로 잡고, 원하지 않던 경제정책이나 국제조약도 수정하거나 폐기할 것을 기대했을 터인데 전국지도는 붉은 색으로 칠해지고 말았다. 심한 표현으로는 무능한 야권심판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말이다. 맨정신으로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침 푸른 눈의 한국인 민병갈 박사님이 마지막 선물로 남겨주신 천리포수목원에 새로 부임하신 원장님께서 수목원 회원들에게 전자편지를 보내셨다. 수목원의 봄꽃 소식을 직원들이 만든 영상에 음악을 곁들여 멋지게 꾸며 주셨다. 편지의 끝에 이렇게 적고 계신다.

"봄꽃은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사람들에게만 그 모습을 보여준답니다."

무심천에는 벚꽃이 만개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벚꽃만 봄꽃이 아니다. 무심천에는 별꽃, 개불알풀꽃, 냉이꽃, 현호색, 바람꽃, 광대나물, 괴불주머니 등 등 수많은 봄꽃들이 피어 있다. 다만 우리가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지 못해서 보지 못할 뿐이다.

선거에서 이긴 사람들은 기쁨에 들떠 있고, 진 사람들은 낙담할 것이다. 그러나 한번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봄꽃에게 허리 숙여 눈을 마주쳐 보길 바란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한번도 선거기간에 눈길을 주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사과와 배상을 위해 싸우는 분들, 오랜 기간 파업현장을 지키고 있는 분들, 선거기간에도 야근을 해야 했던 열악한 상황의 노동자들, 대학 등록금을 벌어 보겠다고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에게 이제라도 따뜻한 눈길 한번 보내길 바란다.

여야를 떠나서 힘을 모아야 할 부분도 많다. 선거의 승패를 떠나서 민족적 견지에서 협력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다. 여야, 승자와 패자를 떠나서 멘붕 상황을 떨치고 수많은 봄꽃들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가지고 사는 낮은 세상을 바라보자.

안보문제와 남북협력 문제는 여야와 계층의 이익을 떠나 협력하자. 한미자유무역협정의 독소조항은 의회가 단합해서 개정하자. 총선을 끝낸 우리에게 봄꽃들이 전해주는 편지를 허리 숙여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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