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벚꽃 상념
무심천 벚꽃 상념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2.04.15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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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잔인한 달 4월 하고도 14일 토요일. 청주 무심천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주말을 즐기려는 청주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노부모를 모시고 나온 효자, 아내를 데리고 나온 애처가, 애인과 함께 나온 연인, 평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미안함에 모처럼 가족을 데리고 나온 가장, 그냥 할일 없이 나온 백수 등 많은 인파가 무심천변을 수놓았다.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아니 봄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게다.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이 봄을 더 좋아한다. 힘든 겨울을 나고 맞는 봄은 황홀하면서도 소생하는 생명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봄은 긴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치열함을 확인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그런 계절에 피는 꽃으로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살구꽃, 배꽃, 사과꽃, 도화, 목련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봄꽃의 압권은 벚꽃이라고 한다. 이는 최근 삼성에버랜드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입증됐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20~40대 성인 남녀들은 가장 좋아하는 봄꽃으로 벚꽃(45%)을 꼽았다. 다음으로 개나리(27%), 튤립(8%), 진달래·목련(7%) 순으로 응답했다.

그렇다. 봄을 가장 잘 표현하는 꽃은 벚꽃이다. 지난 주말부터 기온이 오르면서 무심천 벚꽃이 튀밥터지듯 가지마다 환하게 폈다. 미풍에도 꽃잎이 날린다. 떨어지는 꽃잎은 마치 눈보라와 같다. 벚꽃나무 아래에 서면 눈 속에 갇힌 느낌이다. 뺨에 닿는 꽃잎의 감촉도 부드럽다. 벚꽃이 서양에서 처녀의 순결을 뜻하는 것처럼 청순한 시골처녀 같다. 분칠을 안한 얼굴이 더 이쁜 것 마냥 그 자체로 아름답다.

세상에 꽃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삭막했을 것이다. 총선에서의 패자에게도, 지쳐버린 유권자들에게도, 경기침체에 거칠어진 사람들에게도 무심천 벚꽃은 위로를 준다. 어루만지듯 그렇게 감싸 안아준다.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 없다,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슬픔을 달래주고, 기쁨은 배가시켜주는 것이 꽃이다.

중국 동진(東晋)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대(宋代) 초기에 걸쳐 살았던 중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오류선생전', '도화원기', '귀거래사' 등을 지은 도연명은 울타리 옆 국화 한 송이를 꺾어들고 앞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대화를 나눴다. 송나라의 임화정은 처자 없이 학을 기르며 매화를 너무 사랑해 매화 숲속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래서 그에게 후세들은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렀다. 염계 주돈이는 연꽃을 군자로 비유한 유명한 '애련설'을 짓기도 했다.

이처럼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악한 이가 없다. 봄에 피는 꽃은 겨울을 견딘 꽃이다. 그래서 아주 힘들게 겨울을 난 사람들은 매화 같은 겨울꽃보다 봄 꽃을 좋아한다. 앙증맞은 산수유, 산비탈속의 진달래, 우아한 목련 등 그런 꽃을 좋아한다.

그러나 봄에는 뭐니뭐니해도 벚꽃이다. 벚꽃은 봄이 절정에 이를 무렵 '팝콘 터지듯' 피었다가 한꺼번에 떨어진다. 벚꽃이 분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넋을 잃을 수밖에 없다. 벚꽃은 인생과 같다. 젊음을 한껏 피웠다가 속절없이 또 잃어버리는 것이 영낙없는 벚꽃이다. 짧은 인생처럼 한순간 활짝 폈다가 지는 것 또한 인간사와 같다. 그러면서도 한켠으로는 봄이오면 어김없이 다시 활짝 피는 모습을 보고 또 인간들은 희망을 건다.

총선에서 낙선한 후보들이 떠오른다. 지금 철은 봄이지만 그들 마음은 겨울일 것이다. 긴 겨울의 치열함을 견디고 나면 또 봄은 온다. 그들에게 "활짝 폈으면 언젠가 지고, 졌으면 또 언젠가 다시 핀다"는 겨울을 이긴 벚꽃의 진리를 전하고 싶다. 무심천 벚꽃 밑을 걸으면서 총선 승자와 패자들이 아른거려 젖은 상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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