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부활 그리고 사찰
신문, 부활 그리고 사찰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4.0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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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취재2팀장(부국장)

사람들의 입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볼 것과 들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리고 그처럼 쉽게 열리지 않은 입속에는 차곡차곡 서러움이 쌓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불법 민간인 사찰과 감찰이라는 서슬 퍼런 말들이 신문마다 제각각 난무하는 사이, 사람들은 어쩌면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을 한탄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부분>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극장에서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가 문득 떠오른다.

내일은 신문의 날이다.

일반 사람들에겐 별 의미가 없는 날이겠으나 이날은 신문 종사자들이 일년에 단 하루, 남들 일하는 날 쉬는 기쁨이 있다. 올해 신문의 날은 마침 토요일이어서 그 나마의 즐거움도 사라지고 말았다.

올해로 56번째 맞이하는 신문의 날 표어는 '펼쳐라 넘겨라 세상과 소통하라'이다. 공모를 통해 뽑은 것인데 함께 치른 포스터 부문 공모에는 '정의를 지키는 기사 신문에 있습니다' 시리즈가 선정됐다.

'펼쳐라 넘겨라 세상과 소통하라'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신문을 펼쳐 보는 일, 그리고 각 쪽을 넘기면서 읽은 행위가 표면적인 것이라면 (신문을 통해)세상의 모든 꿈과 희망을 펼치는 기쁨과 힘 들고 어려우며 절망적이거나 부정적인 것들을 넘기는 힘이 신문에 있음을 강조하는 의미는 그 속뜻일 터.

그런데 그런 속뜻이 어딘가 생경하다는 것은 나 자신만의 부질없는 자괴감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신문은 다시 부활해야 한다. 신문 산업의 위기와 경영의 어려움 등 자본의 속성이 되살아나는 일보다는 신문다운 정신의 부활을 먼저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 올곧은 정신이 되살아 날 때 신문은 비로소 세상과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을 수 있겠다.

신문의 날 그 다음 날은 부활절이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절기 가운데 하나인 부활절은 '인간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지 사흘만에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의 날이며 동시에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승리의 날이고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는 생명이다.'(요 1125~26)

부활절은 죄와 사망, 어둠과 절망과 권세가 물러가고 찬란하게 다가 온 새로운 날이기에 기쁨이 있고 승리의 축제가 있다고 기독교인들은 믿는다.

부활에 이 같은 희망과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언제적 이야기인가. 지금 세상에 불법 민간인 사찰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4·11 총선을 앞둔 정국이, 그리고 민심이 요동치는 일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을 보니 부활이 좋긴 좋은 것인가 보다. 그게 특정 세력에만 이득이 되고, 대다수의 국민은 혹시라도 누군가가 나를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신문에서, 방송에서 넘쳐나는 일들을 그저 보고 들으면서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의사 표시를 어쩌면 거부하고 있는 것인가.

신문의 날과 부활절에 속없이 바쁜 사람들은 입술이 바짝 바짝 타들어갈 테고,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말없음으로 그들 출마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주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이여, 안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지어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면서 신문을 통해 보고 방송을 통해 들은 서러움들을 사람들은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토해 낼 것이며, 투표를 통해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봄은 세상의 모든 도덕적 해태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할지니. 그걸 우리는 정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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