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監察)과 사찰(伺察) 그리고 총선
감찰(監察)과 사찰(伺察) 그리고 총선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2.04.0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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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취재1팀장(부국장)

재미없던 이번 총선에 판을 흔들만한 굵직한 소재 한건이 터졌다. 바로 민간인 불법사찰이다.

문제는 당장 일주일 뒤 선거에서 투표를 해야하는데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이는 KBS 방송 새노조가 폭로한 2600여건의 사찰 문건을 놓고 감찰인지 사찰인지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감찰과 사찰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단어다. 감찰(監察)의 사전적 의미는 '단체의 규율과 구성원의 행동을 감독하여 살핌'이다. 정상적인 업무수행의 영역이란 의미다. 그런데 사찰은 사찰(査察)로 쓸 경우 '조사하여 살핌'이란 뜻으로 어떤 불법이나 부당함도 없다. 하지만 사찰(伺察)이라고 쓸 경우는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핌'이라고 돼 있다. 몰래 엿본다는 부정적 의미가 역력하다.

이 논란이 나오자 19대 총선은 격랑에 빠져들었다. 야권은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까지 언급하며 파상공세를 폈다. 그런데 청와대는 "80% 이상이 참여정부때 자행된 불법 사찰"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등에 대한 당시 사찰은 불법사찰이 아니냐"며 맞공세를 폈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권의 생각은 다르다. 공직자와 공기업에 대한 합법적인 감찰 이외에 전방위적인 불법사찰이 있었다는 것이다. KBS 새노조는 △민간인 대상 86건 △언론사찰 19건 △공기업 임직원 관련 85건 중 비정상적인 감찰이 21건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청와대가 역공 카드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 당시 작성된 2354건도 대부분이 작성 주체가 경찰로 통상적인 업무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핵심 쟁점은 'BH(청와대) 하명'이라는 부분으로 모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문건에 적시된 'BH 하명'이 청와대가 불법사찰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 당시 문건을 근거로 들며 '통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모두 224건이 경찰로 내려보내졌다. 청와대는 별건 자료를 내세우며 2007년 5월 23일 하루에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부정입학 및 성추행 비리 등 4건이 경찰로 넘겨졌다는 것을 들고 있다. 따라서 현 정부의 'BH 하명' 역시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이라는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감찰과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경찰로 '이첩'한 것과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로 '하명'한 것은 명백히 다르다는 주장이다.

연일 물고 물리는 공방전 속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2009년 당시 김제동씨 등 이른바 좌파 연예인들을 내사하도록 경찰에 지시한 문건과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사회와 관련 국정원 직원이 김씨를 만났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파문은 정점으로 치닫는 듯하다.

김제동씨 문제를 보면 유신시절, 그 엄혹했던 시기에 연예인들이 권력에 치이는 모습을 다루고 있는 MBC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오버랩된다. "박정희 유신 독재부터 지금까지 사찰 정신이 아들 딸들에게 잘 전수되고 있다"는 민주당 박지원 최고위원의 말이 빈말이 아닌듯 싶다.

이 문제는 지난 보궐선거 등에서 풍향계 역할을 한터라 여권은 이를 계기로 젊은층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올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청와대와 여야가 뒤엉킨 진실게임은 복잡하기만하다. 그러나 누군가 거짓말을 통해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답은 문제가 된 문건 모두를 하루빨리 공개 검증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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