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충북은…
그러나 충북은…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2.03.25 2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부끄럽고 죄송하다. 많은 분들이 긴 시간 애써 만들어 온 통합과 연대의 길이 나로 인해 위기에 빠졌다. 진보의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책임도 져야한다. 단일후보를 만들어냈다는 잠시의 영광보다 연대의 가치와 긍정성을 훼손한 책임이 더 크다"

여론조사 조작의혹과 관련해 지난 23일 야권단일후보를 사퇴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사퇴의 변이다. 진상이 밝혀진 후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국 이 대표는 후보직을 내놨다. 결국 그렇게 됐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엉뚱하게도 도덕군자(道德君子)와 양상군자(梁上君子)가 떠올랐다. 도학(道學)을 깊게 닦고 익힌 점잖은 사람이 도덕군자요,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가리키는 말이 양상군자다.

세월이 흘러 이 시대의 도덕군자는 시쳇말로 젠틀한 사람, 법없이도 살 사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의협심이 강한 사람 등을 가리킨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위로부터 무한정의 도덕성을 요구받는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이 시대의 양상군자는 어떤가. 본래의 뜻은 도둑이지만 온갖 나쁜짓을 하는 사람을 통칭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짓을 해도 주변에서 조차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도덕군자는 범부(凡夫)들이 하는 야릇한 짓거리를 실수로 한번만 해도 용서가 없다. 독립운동가가 기생을, 노동운동가가 룸싸롱을, 시민운동가가 술주정을 하면서 비아냥 거린다. 애주가인 범부가 노상방뇨를 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독립운동가나 노동운동가 또는 시민운동가가 그러면 손가락질을 한다. 습관적으로 하는 것도 아닌 어쩌다 딱 한번 그래도 큰 흠집이 된다.

그런 비아냥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왜냐면 군자는, 운동가는 스스로는 물론 주변으로부터도 그야말로 무한대의 도덕성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범부와 필부(匹婦) 자신들은 못하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요구한다.

이번 이정희 대표 사태도 그런 것이다. 이정희가 누군가. 1987년 학력고사에서 전국 여자수석을 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대에 진학, 총여학생회장으로 활약했으며, 사법시험 합격 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여성복지위원장을 지내는 등 민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18대 국회에 입성, 쌍용차 파업, 기륭전자 사태, 촛불시위, 용산참사 등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들과 아픔을 같이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노동자와 서민의 정치 세력화를 꿈꾸는 민주노동당의 대표까지 지냈다. 이정희 대표가 민권변호사가 아니고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현 통합진보당)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를 가지고 사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보다 더 한 짓거리를 해놓고도 버젓이 갈길을 가는 양상군자 같은 정치인들이 득실거리는 우리 정치현실의 구체적인 면모를 보면 이 대표가 억울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일찍 사퇴했어야 했다. 그 문제가 터진 그날, 자신의 보좌관이 그랬다는 것을 안 순간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이유는 사퇴의 변 중에도 있다. '진보의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책임'. 도덕성이 진보의 핵심가치라는 외면할 수 없는 정체성을 보면 그렇다. 무한대의 도덕성 요구는 여론조사 조작의혹이 터진날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정희 너마저"가 웅변해 줬다. 선명성과 도덕성이 뚜렷한 정치인으로 각인된 그였기에 실망도 컸던 것이다.

그렇지만 늦게라도 결단을 내린 것은 천만다행이다. 사퇴후 그에 대한 비판이 환영으로 바뀌고 그만한 정치인도 없다는 칭찬도 줄을 잇는다고 한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떠나 깨끗한 정치를 갈구하는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바라본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정치인의 성장통을 바라보면서 지역 정치판을 곱씹어 본다. 그러나, 그러나 충북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