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특권과 무례함
국회의원의 특권과 무례함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3.2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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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4·11 총선을 앞두고 공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공천에 탈락해 분루(憤淚)를 삼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도 있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중앙당의 공천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하겠다고 탈당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상대 후보자들에 대한 폭로가 난무해 때론 입에 담기 어려운 성추문에 삭발로 대응하는 후보자와 기자회견 중 눈물을 쏟으며 결백을 주장하는 후보자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국회의원이 하고 싶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는 비단 필자뿐만은 아닐 듯 싶다. 4년 동안의 비정규직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지만 자리가 주는 특권과 혜택의 맛을 본 자는 권력욕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산에 올라가 보지 않은 자가 어떤 말을 해도 정상에 서본 사람만이 느끼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헌법상 보장하는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외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혜택은 많다. 국회의원이 되면 주어지는 혜택이 무려 200가지가 된다고 한다. 1억이 넘는 세비는 물론이고 공항 귀빈실 이용 및 차량 유류비 지원 등 자잘하게 누리는 특권이 많다. 그리고 금배지를 다는 순간 각종 행사에 초청을 받아 단상 위에 앉는 영광도 누리고, 지역 현안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도 갖게 된다. 시·도의원 공천에 입김을 넣어 자기 사람을 심어 기반을 다질 기회도 가진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아침에 꽉 막힌 도로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선거철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연례행사처럼 재래시장 골목을 누비며 물건을 사고 평생 몇 번 먹어보지도 않았을 떡볶이도 먹고, 심지어 대로에서 큰절을 하며 지역주민의 머슴을 자처하는 모습이 민망스럽고 마뜩하지 않은 것은 초심을 잃고 이권에 개입해 지역주민을 우롱하며 개인의 소신보다는 당의 입장에 따라 거수기로 전락하는 모습을 자주 봐 온 탓이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시장골목을 어슬렁거리고 지역의 작은 행사에도 쫓아다니는 것을 바라는 유권자는 없다. 입법기관으로서 당연히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법을 만드는데 역량을 소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간혹가다 행사에서 보게 되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단상(壇上)에 앉아 축사 하는 것이야 의전행사 중 하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행사 주최측에서 준비한 공연이 시작되면 으레 일어나 악수를 청하고 자리를 뜨는 모습을 자주 봤다. 급한 일이 있거나 다른 일정이 있으면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뜨면 그만인데 꼭 단상에서 내려와 맨 앞줄에 앉은 지역의 유지나 기관장들과 일일이 악수를 건네고 자리를 뜬다. 공연을 보던 시민은 집중도가 떨어지고 애써 준비한 공연은 흐름을 잃게 된다.

과거 부산에서 축구 동호인들간 지역 친선 축구 경기가 있었는데 지역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시·구의원들에 대한 내빈 소개가 길어지자 참석한 400여명의 축구인들이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대회가 무산된 적이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주최측에선 자리를 빛내고 권위를 살려주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 도가 지나쳐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총선을 얼마 앞두고 후보자들은 지역을 위해 분골쇄신한다고 하지만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늘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 선거철이라 허리는 굽혀도 마음만은 대쪽처럼 꼿꼿해 그 습성이 잘 고쳐지질 않나 보다. 권위는 남이 세워 주는 것이지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행사장에서 시민의 지청구를 듣는 깜냥도 안되는 국회의원보다 단상 밑에 앉은 시민의 위대함을 알고 마음을 숙일 줄 아는 사람이 금배지를 달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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