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행위도 처벌하는 나라
구걸행위도 처벌하는 나라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3.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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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지난달 말 국회에서 경범죄 처벌법이 개정되었다. 시행은 1년 뒤부터다. 몇몇 언론과 인권단체에서 이에 대해 우려를 전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조문을 정비하고 법체계를 다듬은 점은 훌륭하지만 슬그머니 경찰의 일처리 편의를 위한 조항을 끼워 넣어 시민들의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인권침해소지를 살펴보기 전 어떤 개정이 있었는지 보자. 일반적인 법 형식에 맞게 총칙을 두고 제정 취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시대변화에 따라 처벌의 필요성이 없어진 뱀을 진열하는 행위, 굴뚝관리소홀, 비밀 춤 교습 등과 같은 조문이 사라졌다. 금연장소에서 흡연하는 행위나 정신병자 감호소홀 등은 국민건강증진법에서 처벌하면 되므로 이러한 조문들도 사라졌다.

그간 입주민들을 짜증스럽게 만들었던 광고물 부착행위 등도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적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거짓광고, 업무방해, 암표매매, 출판물 부당게재 등은 범칙금이 20만원으로 높아졌다. 강청을 강요로 바꾸고, 공작물을 인공구조물로 바꾸는 등 용어순화도 보인다. 그간은 타인을 시켜 구걸을 한 경우만 처벌하였는데 이제는 본인이 스스로 구걸을 하는 경우도 경범죄에 포함되었다.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우리가 스토킹이라고 불렀던 지속적 괴롭힘과 술에 취해 관공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행위 등이 경범죄에 포함되어 처벌받게 된 점이다. 이밖에 철도특별사법경찰도 통고처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뜻 보면 무척 합리적으로 개정되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하지 않다.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면 경찰이 현행범으로 바로 체포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되었지만 기준이 모호해서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술을 먹고 소란을 피우더라도 물리적인 폭행이 있어야만 체포가 가능했으나 개정된 경범죄 처벌법에선 현행범 체포 조항이 새로 마련되었다.

개정 법률안에 따르면 관공서에서 술에 취한 채로 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하면 6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한다. 60만원의 벌금액에 관하여도 인권단체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벌금 50만원을 넘기면 영장발부 없이 현행범으로 체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정당한 항의를 해도 술을 마셨다면 체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경찰관 편의만 생각한 법률로 오랜 경찰의 민원을 국회가 들어준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주취소란 행위는 그 기준이 모호해 인권침해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많다.

스스로 구걸하는 행위에 대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료에 처하는 게 과연 옳은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 가난이 국가에도 책임이 있을 것인데 그에 따른 구걸을 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가혹하다. 구걸하는 입장에서 10만원의 벌금을 낼 수도 없을 것이고 결국 인신을 구속(노역장 유치나 구류)할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가 허술한 상태에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인권단체의 요구는 이유 있다.

아직 시행일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국회의원 총선거기간인 이번 기회에 국민적 논의를 거쳐 일제 잔재인 이 법 자체를 폐기하고 다른 법률에서 각각 다루도록 하는 방안도 살펴보자.

최소한 부당성과 애매한 기준을 바로 잡아 경찰이 자의적으로 시민의 일상을 재단하는 일을 막도록 하자. 군기잡기식 처벌이 나오지 않도록 막아낼 방안을 마련해 보자. 구걸행위를 처벌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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