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시작하는 것들을 위하여
처음처럼, 시작하는 것들을 위하여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3.15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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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취재2팀장(부국장)

3월부터 중학교 3학년이 된 막내딸이 가져 온 가정통신문이 요즘 나를 참으로 기쁘게 한다.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에 신입생을 맞이하고 학생들은 진급을 하였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가정통신문에는 학부모님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실 것을 예상하고 학교생활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전해드리는 내용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학급을 소개한다며 3학년 몇 반이며, 최희라는 담임선생님의 이름을 우선 적고 있다.

'더불어 사는 학급'이라는 급훈을 알려주면서 실장과 부실장의 이름과 3가지의 학급규칙, 담임선생님의 핸드폰 전화는 물론 사무실 전화번호와 함께 선생님의 인사말까지 살뜰한 정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시간을 잘 지키자',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자', 서로를 존중하자'는 학급 급훈이 학생들과의 토론을 거친 것인지 아니면 담임선생님의 평소 소신이 담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학교 3학년 어린 학생들에게는 늘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어서 반갑다.

무엇보다 학부모인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양손을 모아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는 담임선생님의 예쁜 사진이 가정통신문에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이다.

최희 선생님은 인사말에서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교 입시와 진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담임을 맡게 되어 부담도 있으나, 중학교 마지막 해를 함께하게 되어 기쁨도 큽니다. 아이들이 좋은 추억 많이 가지고 졸업할 수 있도록, 부족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담임이 되겠습니다"라는 아름다운 다짐이 오롯이 배어 있다.

어디 그 뿐인가. "학부모님께서 학교 전반 사항에 대해서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부모님들의 많은 조언 바라며 협조 부탁드립니다."는 글귀는 또 얼마나 예쁜가.

가정통신문은 그리고 끝으로 1년 동안의 학사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는 청주의 한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어린이가 엘리베이터에 붙여 놓은 인사말 쪽지에 새삼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멈춰 서지 못하고 계속 불거지면서 아이들과 학교를, 그리고 온 나라를 불안하게 하는 학교 폭력으로 인한 시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성이 듬뿍 담긴 가정통신문을 보내준 막내딸 담임 최희선생님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은 새내기 선생님이란다.

4년의 대학생활 내내 교원임용고시에 시달렸을 것을 생각하면 이런 가정통신문의 정성이 참으로 애틋하다.

깨알같은 글씨로 16절 종이를 가득 채운 선생님의 가정통신문에는 '처음'이라는 풋풋함과 학교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함께 하는 소통의 간절함이 있고, 그 정성은 학교에 대한 믿음으로 당연히 이어진다. 거기에 학교폭력이 끼어 들 틈은 없다.

세상 모든 일은 처음의 시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오죽하면 많은 사람들이 책상 앞에 '처음처럼'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고 살겠는가.

변하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처음의 그 풋풋함과 옹골찬 다짐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 된 세상이다.

그러니 다시 시작되는 3월, 그리고 새로움을 만나게 되는 그 '처음'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처음 교직을 맡은 최희 선생님처럼 정성을 다해 세상과 소통하며, 친절한 알림을 통한 믿음을 만드는 작은 일이 세상을 진정으로 기쁘게 만드는 일임은 잊지 말아야 겠다.

작은 정성이 가져다주는 큰 기쁨이 이 봄, 다시 시작하는 모든 것들에게 진정 축복이었으면 좋겠다.

하여 부디 최선생님도 처음의 그 살뜰한 다짐과 예쁜 마음 변함이 없이 오래오래 계속되면서 세상을, 그리고 아이를 맡긴 학부모들에게 늘 든든한 믿음으로 남아있게 되길.

아! 이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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