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추억으로 기억한다
음식은 추억으로 기억한다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3.1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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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얼마 전 사람들과 칼국수를 먹기 위해 식당에 들렀다. 여럿이 모여 앉아 뜨거운 입김을 불어가며 칼국수를 먹고 있는데 옆에 앉은 분이 칼국수 안에 든 파를 골라 버리는 것을 보며 다 큰 어른이 파를 먹지 않느냐며 농담을 던졌지만 실상 나는 당근을 골라 옆에 쌓아두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식습관은 좀처럼 바뀌질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글에 '시금치가 몸에 좋은 이유를 대라면 수십 가지를 댈 수 있다. 그러나 난 지금도 시금치는 먹지 않는다.'라며 글 말미에 음식은 추억으로 먹는다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입맛과 손맛은 길드는 것이다. 그 내면에는 익숙함이 자리잡고 있다. 가끔은 어렸을 적에 젓가락이 가지 않던 음식이 생각나고 그 음식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내면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을 들고, 내 손을 끌고 고깃집에 데려가 실컷 먹으라며 채근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노릇노릇한 삼겹살의 고소함보다도 배고픈 친구의 마음을 살뜰히 헤아려 준 친구의 넉넉함이 알기에 아직도 내게 삼겹살은 우정으로 기억된다. 지역을 상징하는 음식은 대개 그 지역에 많이 나는 재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서민적인 음식이 대부분이다.

전주의 비빔밥이 그렇고 강원도의 막국수도 올챙이 국수 등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배고픔을 쉽게 해결해 주는 서민 음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충북의 올갱이 국도 그 한 예이다. 음식은 나누는 것이고 그래서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중요하다. 산해진미로 차려진 음식도 불편한 사람과 먹는다면 음식이 갖고 있는 맛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을 수 없다. 음식은 추억과 그리움이 오롯이 담긴 사유물이다.

청주시에서 서문시장을 삼겹살 골목으로 특화해 청주의 대표 음식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청주 한정식을 대표 음식으로 개발해 특화하려 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인위적으로 음식을 선정 발굴해 상징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큰 효과가 없음이 입증되었다.

음식에는 이야기가 따라와야 한다. 질퍽한 삶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어머니 손맛처럼 뒤가 켕기는 아련함이 있어야 한다.

곰삭은 흑산도 홍어가 질곡의 세월을 넘어온 김대중 대통령을 떠오르게 하고, 멸치가 김영삼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음식은 이야기와 역사가 있어야 한다. 청주가 삼겹살의 고향이 되기 위해선 그와 맞는 이야기를 적극 발굴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삼겹살은 청주를 떠나 온 국민이 선호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삼겹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애착은 칠레와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협상할 당시에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유독 삼겹살의 소비가 많은 우리나라를 겨냥해 냉동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 철폐를 요구했다. 결국, 10년간 관세 철폐를 유예하기로 하고 대신 수입이 문제가 될 때는 수입을 막는 세이프가드(safeguard)라는 안전장치를 두기로 합의할 정도였다.

전국 어디를 가도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을 청주의 대표 음식으로 만든다고 음식점을 한곳에 모아 두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청주 삼겹살과 얽힌 추억을 모으고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지금도 청주에서 생활했던 친구들을 만나면 고추장 양념을 한 돼지고기를 먹고 맛깔나게 밥을 비벼주던 이야기, 간장에 찍어 새콤한 파절이와 함께 먹던 추억담을 이야기한다. 역사적 고증과 더불어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음식은 추억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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