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와 청암을 아시나요?
단재와 청암을 아시나요?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3.1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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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옥천 땅 군북면 비야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재학시절부터 기자생활을 시작,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수많은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다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하던 이가 있다. 청암이다.

정론직필을 이어가던 동아일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유신정권은 광고주들을 압박하여 이른바 백지광고 사태가 발생했다. 동아일보 사주는 광고를 받기 위해 기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이후 '씨알의소리'편집위원을 맡고 각종 저술활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84년 해직기자들을 모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하고 월간 '말'을 발행했다. 월간 '말'은 군사독재정권의 통제를 받던 언론사들과는 달리 그 당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을 사실대로 보도했다. 또한 독재정권의 언론 통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른바 보도지침을 폭로하여 민주화 운동의 진전에 크게 기여했다.

1988년 제도권 언론의 한계를 절감한 국민들은 6월 항쟁 이후 새로운 언론의 필요성을 느끼고 국민주 방식으로 자금을 모아 한겨레신문을 창간하였다. 그는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과 회장을 맡았다. 안타깝게 그 후 고문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이 발병하여 수년간 투병하다 2001년 서거하였다.

송건호(宋建鎬, 1927년 9월 27일 ~ 2001년 12월 21일)는 대한민국의 언론인이다. 호는 청암(靑巖). 언론인으로뿐만 아니라 저술가로서도 많은 저작을 남겼고, 1994년에는 호암상을, 1999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사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청암은 유명한 역사학자들도 꺼려하던 현대사를 연구하여 위대한 저작을 남긴 역사가이기도 하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바른 지식인이었다. 글의 내용과 자기의 생활 사이에 큰 모순이 없어야 한다고 평소 이야기하며 그대로 살아온 지식인이다. 단재 선생은 일찍이 누구나 처자를 어여삐 여기지만 나라를 위함에는 가족까지 희생하는 법이라 하셨는데 단재의 그 길을 청암도 그대로 걸어갔다.

우리 고장 시인 도종환의 시 '고두미 마을에서'로 잘 알려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는 단재 신채호선생의 고향이다. 단재선생은 책에서 자신을 무애생(无涯生)으로 부른다. 글 속에서 자신을 지칭할 때 필자라고 쓰는 데 비해 선생은 멋지게 자신의 아호를 쓰셨다.

단재는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던 언론인이다. 신민회에 참여하고 블라디보스톡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이다. 민족의식을 일깨운 역사가이다. 시인이다. 또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한 아나키스트다. 일제에 체포되어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셨다.

나는 우리 고장 언론인으로 단재와 청암을 존경한다. 우리 지역에서 단재와 청암을 기념하는 행사가 늘고 그들을 배우려는 사람이 더해갔으면 좋겠다. 해마다 언론운동에서 이분들의 이름을 딴 상을 만들어 시상하면 좋겠다. 제주도나 해안절경을 가진 지역에 비해 문화 관광자원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말고 부단히 우리가 가진 자원과 문화적 유산, 훌륭한 선조를 찾아 기념하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했으면 한다.

각급학교의 토요휴무 실시로 체험활동과 수학 및 답사여행이 활기를 띠고 있다. 시인과 작가, 역사가 등 우리 고장 인물기행 프로그램으로도 만들어 보급하자. 결코 우리 고장은 관광자원이 부족하지 않다. 다만 우리의 안목이 부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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