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채는 남으로, 바퀴는 북으로
끌채는 남으로, 바퀴는 북으로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3.12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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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중국 전국시대 위왕(魏)나라 왕이 조(趙)나라 정벌을 작정했다. 출장갔던 계량(季梁)이라는 신하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왕에게 간한다. "오는 길에 이상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남쪽의 초(楚)나라를 가는 중이라고 했는데 마차는 엉뚱하게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방향을 잘 못잡은 것 아니냐고 묻자 "나의 말이 잘 달린다", "내게는 돈이 많다"는 등 엉뚱한 소리만 하면서 초나라와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물었다. "왕은 천하 제패를 꿈꾸고 계십니다. 그런데 나라가 조금 큰 것만 믿고 이웃의 작은 나라를 공격한다면 왕의 영토와 명성은 떨칠 수 있을지 몰라도 천하를 경영할 패자로서의 위신은 바닥에 떨어질 것입니다. 제가 만난 어리석은 사람처럼 어찌 목표와 다른 곳을 향해 마차를 몰려 하십니까". 끌채는 남쪽을 향하고 바퀴는 북을 향한다는 남원북철(南轅北轍)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요즘 여·야의 총선후보 공천 과정이 바로 이 짝이다. 마부는 개혁과 국민을 지향한다고 외치며 끌채를 잡고 있지만 바퀴는 반대 방향으로 질주한다. 대폭적인 물갈이를 호언했지만 20대 몇몇을 영입해 구색을 갖췄을 뿐 새로운 얼굴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 국회의원, 전 단체장, 전 지방의원 등 벤치를 지키던 선수나 2진에서 불러올린 '그 나물의 그밥'들 일색이다. 양당 모두 특정 파벌의 독식이라는 비판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복과 탈당, 무소속 출마로 이어지는 공천 후유증과 잡음은 총선 역사상 최악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등장한 안철수가 폭발적 지지를 얻으며 정치 구세주로 떠오르자 정당정치의 위기와 환골탈태를 외치던 모습은 간데 없다. 끌채와 바퀴가 반대 방향으로 치달리는 수레의 운명은 안봐도 비디오다.

일본 정치의 현재는 이렇게 방황하는 수레들의 종착점을 시사한다. 최근 일본 아사히 신문 여론조사에서는 집권당인 민주당 지지율이 17%로 내려앉고 2당인 자민당은 12%로 추락했다. 지지(時事)통신의 여론조사에서는 '지지 정당이 없다'는 무당파가 68%를 넘었다. 원전사태 수습에서 정권의 총체적 무능이 드러나면서 집권당의 몰락은 예견됐지만 야당들도 동반추락하는 상황에선 그야말로 정치가 부모와 길잃은 미아가 돼버린 느낌을 줄 정도다. 지난 6년간 6명의 총리가 갈렸지만 줄줄이 강판됐고, 이제 또 다시 내각이 새 총리를 내느냐, 아니면 조기 총선을 치르느냐 하는 착잡한 기로에 서 있다.

정권을 잡은 정당과 이를 견제·보완하는 최대 야당의 지지율이 합쳐도 30%가 안되는 정치 실종의 시대를 맞아 떠오르는 인물이 하시모토 도루(橋下 徹) 오사카 시장이다. 2008년 38세 나이로 자민당과 공명당 공천을 받아 오사카부(府) 지사에 당선돼 최연소 단체장 기록을 세웠다. 오사카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정당인 오사카유신회를 창당한 그는 지난해 오사카 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자신이 맡았던 오사카부 지사에도 자당 후보를 공천해 당선시킴으로써 일본 제2의 도시를 수중에 넣었다. 그는 오사카유신회의 전국 정당화를 꾀하며 기존 정당들을 위협하고 있고 국민들은 이같은 시도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시모토는 개혁 성향이지만 한편으론 일부 언론이 파시스트라고 부를 정도로 극우적이다. '일본 정치에 필요한 것은 독재', '일본은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어 논란을 부른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변국들 입장에서는 위험천만한 철학의 소유자이지만 일본 국민들은 공공연히 파시즘을 주창하는 그의 극우적 스타일에서 실종된 리더십의 부활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바퀴는 북으로 굴러가는데 남쪽으로 가고 있다고 외치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서도 일본 정치에 드리워진 몰락의 그림자가 감지된다. 기존 정당들이 여론의 철퇴를 맞고 퇴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걱정되는 것은 기성 권력이 싹쓸이 당한 정치적 공황기를 맞아 어떤 정파나 리더가 출현해 옛 권력을 대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민의 절망이 극에 달하면 급진적 성향의 권력이 발호했던 것이 근대사 아니던가. 일본의 적잖은 식자들이 하시모토의 승승장구를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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