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눈빛
잃어버린 눈빛
  •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 승인 2012.02.2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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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미국의 정보통신(IT) 전문잡지 피시월드(PC world)는 지난 해 4월 16일 스마트폰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진 10가지 제품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MP3플레이어. 휴대용게임기. 소형디지털카메라. PMP. 음성녹음기. 내비게이션단말기. PDA. 손목시계. 종이지도. 전화번호 안내책 등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진 것은 무엇보다 인간성 상실이란 생각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교감 없이는 끝없이 고독한 존재인데. 스마트폰을 통하여 글로벌하게 대중과 교감 한다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심하게 고독해지는 시대가 지금인 것만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누르는 손가락을 보면, 그 손가락의 주인공이 기계에게 '나 외롭다'고 쿡쿡 찌르는 것만 같습니다. 얼굴도 모르면서 무작위로 친구 맺고 일촌 맺으며 소통한다지만 스마트폰의 관계는 고립된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서 그 눈빛을 깊이 응시할 수가 없습니다.

눈빛은 하늘이고, 하늘보다 큰마음이 담겼는데 말입니다. 너는 눈빛으로 내게 다가왔으며 눈빛으로 늘 내게 머물길 바라는데. 눈빛은 모든 존재의 증명인데 말입니다. 눈빛이 흔들리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며, 눈빛이 불붙는 순간에 사랑도 불타고, 분노도 불타고, 가끔은 젖은 눈빛의 은은한 조명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깊어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무엇이건데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외면하는지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대가 인간의 눈빛을 쓸모없게 만들어 가면서 인간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너와 함께 있지만, 너는 나를 보지 않고 스마트폰을 봅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스마트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눈빛을 읽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모두는 함께 있지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몸은 함께 있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몰라보고 엉뚱한 폰 속으로 수시로 호출당합니다. 너의 마음을 화면의 문서로 읽어내야 하고, 화면으로 답해야 하고. 눈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너와 날 이해하는 시간이 속절없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집중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거기 있으므로 나는 여기에 있으며 내 눈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보고 있으며 당신이 생각하고 짐작하는 모든 것을 말이 아니라 눈 맞춤으로 당신에게 집중하고 싶습니다. 마법 같은 사랑을 말하는 연인들은 한 줄기 섬광의 짜릿함이 눈을 통하여 들어왔다고 추억합니다.

수많은 은유시인들이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읊었으며, 수많은 가수들이 '그저 바라봄으로 행복하다'한 그 바라봄도 눈빛을 의미했습니다.

가족이나 정치하는 사람들도, 회사의 사장님도 입이 만들어낸 빤들빤들한 말 이전에 눈빛의 진정성을 생각했으면 싶습니다. 둘러앉은 밥상머리거나 사무실이나 국회가, 눈빛의 따습거나 차가운 온도 때문에 반목 보다는 인간적인 합일점을 찾게 될 것만 같습니다.

눈빛이 눈빛으로 건너가는 설레임 때문에 마음이 출렁거리겠지요. 흔들릴 때도 있고 어지럽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눈빛에 깃든 신성한 에너지는 상대가 누구건 마주한 사람의 눈빛을 바라보는 동안, 인간의 영혼을 잠시 응시하는 것이겠지요.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컴퓨터 하는 시간을 정해 주거나, 컴퓨터를 거실에 두고 관리했던 것도 옛날 얘깁니다. 손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니 집이건 도서관이건, 웹서핑에 카톡에 게임에, 아직 성숙되지 않은 청소년들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개인정보 유출뿐만 아니라 차분하게 자라야 할 인성문제를 포함하여 사회전반적인 문제가 될 것이 뻔하다 싶습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해 스마트폰을 해야 하는 도덕적 규범이라도 마련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하여 글로벌한 소통을 한다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목이긴 사슴' 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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