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친절, 영수증
과잉 친절, 영수증
  • 강희진 <한국문인협회 음성군지부장>
  • 승인 2012.02.0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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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한국문인협회 음성군지부장>

바야흐로 연말정산을 할 때다. 직장인들에게 있어서는 열세번째 달 월급이라고도 한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을 열어 보니 연말정산을 꼼꼼히 챙기는 법 말고도 이것만은 꼭 알아두자는 내용의 조회 수가 무척 많았다. 나 또한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다시 한 번 들어가 내용을 살펴보았다.

연말정산은 우리가 일년 동안 소비했던 금액을 총 망라해서 정산을 하는 데 증거자료가 되는 것은 영수증이다. 나에게 영수증의 중요함을 깨우쳐 주었던 사건이 있었다.

몇해 전 아침에 출근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자동차 번호판이 없었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나 말고도 몇대의 자동차 번호판이 없어졌다. 경비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읍사무소에서 떼 갔다는 것이다. 읍사무소로 확인을 했다. 자동차 세금을 내지 않아서 떼어갔다고 대답했다. 분명히 냈다는 생각에 한바탕 싸움을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영수증이 없었다.

그 낭패감은 지금도 잊지 못할 일이다. 사무실과 집을 몽땅 뒤져 찾아냈고 영수증을 팩스로 보내고서야 번호판을 찾고 그 직원한데 전산망의 오류로 그랬다며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정리는 하지 않더라도 통을 하나 마련해 몽땅 집어넣고 최소 1년간은 보관하고 있다.

이런 내가 지금 영수증 정리를 하는 일로 월급을 받고 있다. 남편에게 받은 영수증을 정리하다 보면 남편의 행동반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영수증에는 지불금액과 상호는 물론 카드결제 한 날짜와 시간, 품목까지 나와 있어 모든 상황이 손바닥 안에 든 것처럼 파악이 된다.

오늘은 뭘 했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영수증에는 친절하게도 언제 어디서 점심을 먹었고 저녁은 어떤 요리를 먹었는지 그리고 몇명과 함께 식사를 했는지까지 명시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무슨 쇼핑을 했는지까지 한눈에 파악이 되는 것도 특기할 일이다. 가끔 유명한 커피숍 영수증을 가지고 오면 가격과 품목을 확인해 본다.

이렇게 영수증 감시를 하고 있는 나를 남편이 안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 자기 사생활의 위험을 느끼고 더욱 은밀하게 진화되지 않을까 싶어 웃음도 나온다. 아니 그것은 남편에 관련된 일이지만 나 역시 똑같은 위험에 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의 비밀을 힘들이지 않고 캐낼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 역시 나의 비밀을 손아귀에 쥐고 들여다볼 소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아주 친절한 영수증이 유발하는 불상사라고 할지.

가끔 참 비밀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인터넷의 발달로 온갖 동영상과 사진 등 원치 않는 사생활 유출을 당하기도 한다. 유명인에게는 파파라치가 따라붙어 사소한 사생활을 유출시키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조차도 온갖 카메라에 노출이 되고 있다. 거리 곳곳에, 혹은 상점마다 여기저기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범죄 예방이라는 효용가치와 사생활 침해라는 이율배반적 관점에서 충돌을 하기도 한다.

며칠 전 남편이 내 자동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했다. 여성운전자에게 혹 있을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라지만 영상을 보니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소리와 목적지까지 다 확인이 되었다. 그 후로는 차안에 늘 남편이 타고 있는 듯 불편했다. 편하고 좋은 만큼 그에 따른 사생활 문제도 여파가 많다.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 지켜본다는 느낌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은 안전과 침해사이에서 끊임없는 시소타기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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