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풍경…산다는 것과 살아 간다는 것 7
베트남 풍경…산다는 것과 살아 간다는 것 7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2.02.0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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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저녁나절이 되면 쇠붙이를 딸랑이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부황을 뜨라는 소리다. 전체적으로 가난한 동네라서 병원을 자주 갈 수는 없다. 병원이야 갈 일이 없는 것이 좋지만 온 삭신이 아프고 힘들면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형편이다. 아픈 몸을 꿍꿍거리며 견뎌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부황쟁이들이 거리를 쏘다닌다. 불러 세우면 바로 그 자리가 병원이 된다. 자전거 뒤에 착착 네모지게 접은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윗통을 벗기고 눕힌다.

소독을 했는지 어쨌는지 알고 싶지 않은 부황기를 꺼내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꺼내 놓는다. 화장지에 불을 붙여 부황기에 집어 놓고 확 뺀다. 잽싸게 부황기를 등짝에 붙인다. 부황기가 살을 빨아들여 몸에 붙는다. 그렇게 이십여개의 부황기를 온 몸에 붙여 놓고 부황쟁이는 담배 한 대 꼬실리며 앉았다.

부황기는 저절로 떨어 질 때도 있고 억지로 떼야 할 때도 있다. 부황을 뜬 자리는 거멓게 멍자국이 맺혀 있다. 그래도 안 한 것 보다는 낫나보다. 거리 곳곳에는 부황쟁이에게 잡혀 멍든 사람들이 보인다.

가끔은 예쁘게 차려입은 멋쟁이 아가씨의 목덜미에서도 발견 될 때가 있다. 안쓰럽다.

인생처럼. 힘들어도 기댈 곳이 없다. 기댈 곳이 없으니 철저히 혼자다. 외롭다고 울어봐도 영혼에는 부황을 뜰만한 곳도 없고 부황을 떠 줄 사람도 없다. 오로지 혼자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견뎌낸 세월이 주름으로 남는다. 쭈글쭈글한 흔적으로 남는다. 세파를 이겨낸 주름은 아름답다. 그러나 세파에 찌들은 주름은 안쓰럽다. 부황 뜬 자국처럼.

밤늦은 공원 곳곳에는 오토바이가 즐비하다.

대낮의 햇살을 피해 밤이 되기를 기다리던 청춘들이 몰려나온다. 오토바이 위에 쌍쌍이 붙어 앉아서 무언가를 속삭이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고 어루만지며 서늘한 밤을 뜨겁게 보낸다.

무엇을 속삭이는지는 모른다. 다만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테고 저마다의 애절함과 사랑스러움이 있을게다.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그윽하고 촉촉하고 아련하다.

둘 사이의 공간은 숙련된 칼잡이가 와도 틈을 찾지 못할 정도로 밀착되어 있다.

좁은 오토바이 위에서 균형을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짝이 없는 청춘들은 각기 와서 할일없이 누군가 작업을 걸어 주기를 바란다.

기름을 발라 치장을 한 사내의 몸에서는 싸구려 포마드 냄새와 향수 냄새가 진동을 하고 여인네의 몸에서는 사내를 유혹하는 비누 향이 가득하다.

서로 탐색을 하고 탐색을 당하다가 눈이 맞으면 오토바이 위에 걸터앉고, 눈이 안 맞으면 내일 밤 또 발정난 암컷 수컷의 몸으로 공원을 배회한다.

밤이슬이 내리지도 않으니 거슬릴 것이 없고 거슬릴 것이 없으니 꼬박 밤새운 것들이 아침이면 부스스한 얼굴로 직장이 있으면 직장에 가서 졸기도 하고 직장이 없는 것들은 어두컴컴한 골방의 그물 침대에 누워 또 밤을 기다린다.

지나고 보면 잠깐이라지만 청춘의 뜨거운 피는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 그런 과정을 거쳐 피가 식으면 인생은 시들해지고 쓸쓸한 잔영만 남는다. 어깨 위에 소복히 쌓인 슬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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