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살
자 살
  • 이진순 <수필가>
  • 승인 2012.01.2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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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진순 <수필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지는 석양을 보면 가슴이 콩닥거리며 뛰는 날이 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떠올라서다.

예비 군복차림의 청년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한적한 제방 위에 손바닥에 시퍼런 약물이 묻어 있었고 약을 먹었다고 했다. 길을 가다 현장을 발견하고 황당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성난 얼굴을 한 해는 석양을 붉게 물 들이며 나를 더욱 겁먹게 만들었다. 푸르기만 한 들을 붉게 조명한 벌판에 지게를 진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었다. 난 황급히 손을 흔들며 위급한 상황을 도와 달라고 소리를 질러댔었다.

다행히도 봉고차 한대와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까치내 합수머리 쪽에서 달려와 주었다. 난 손을 들고 길 복판에서 구원을 요청했다. 청년을 태우고 남궁병원을 가니 약수터 가는 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병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독극물을 먹은 이들만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이었다.

봉고차 기사도 청년도 다 가버리고 난 청년의 보호자가 되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머니에 소지품을 찾아보니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주소로 연락을 취해 주고 부모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위세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잔혹한 짓이었다. 척 늘어져 있던 학생을 보며 가엾다는 생각보다 미운 생각이 들었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끊는 행위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부모 앞에 불효를 범한 철없는 행동이 미웠다. 어리석은 짓에 화가 나서 이해할 수 없었고 용서가 되지 않았던가 보다.

이틀 후 전화가 걸려 왔다. 학생이 죽었다고 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아버지는 교사였고 개학을 이틀 앞두고 학교가 가기 싫어서 죽음을 택한 아이, 공부를 못해서 외곽지역의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었단다. 학교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내 머릿속은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어린 시절 우리 반에는 눈 하나가 애꾸인 소녀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아이가 있었다. 소아마비인 아이는 공부를 아주 잘해서 부반장이었고 활달하여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덩치 큰 애꾸눈 소녀에게 친구들은 "눈깔 망난"이라며 쉬는 시간이면 둘러서서 뒤에서 머리를 잡아당겼다. 왕따를 당하여 집단으로 폭행당하며 놀려대는 쉬는 시간이 그 친구에겐 지옥이었다. 분해서 눈물범벅이 되어 흐느끼며 울었던 친구가 떠오른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마저 성난 얼굴로 보였던 그날 일은 학교폭력으로 자살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가슴이 몹시 아프다. 힘없고 공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아이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있을 것이다. 쉽게 목숨을 끊으면 모든 것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부모님께 얼마나 큰 불효를 범하는 짓인지 깨우쳐 주고 싶다.

세월이 60년이 흐른 지금 왕따를 당했던 소녀는 성형으로 눈도 예쁘게 고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사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생이란 지금 현실은 어둡고 슬프고 힘들어도 살다 보면 변하는 것,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다 보면 꼭 아름다운 미래가 오게 마련임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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