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와 아버지
고등어와 아버지
  • 반숭례 <수필가>
  • 승인 2012.01.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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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반숭례 <수필가>

겨울철 접어들어 우리 집 밥상에 고등어조림을 자주 올린다. 가족들은 조린 고등어 살점보다는 그 안에서 함께 어우러져 조려진 무와 김치를 더 좋아한다.

아버지도 고등어 반찬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여름철에는 고등어자반을 기름에 튀기고, 겨울철에는 넓적하게 썰은 무와 김장김치 한 포기를 반으로 잘라 냄비 밑에 깔고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조린 고등어를 상에 올리셨다.

밥상 위에 생선이 올려진 날은 남자와 여자의 밥상이 따로 차려졌다. 반지르하게 조려진 맛깔스런 고등어가 올려진 밥상에는 아버지와 남동생들이 마주 앉았다. 무와 김치를 넣고 조렸지만 그나마 생선가시가 달라 붙어 있어 명색이 고등어찌개로 차려진 밥상머리에선 딸들이 숟가락만 든 채 아버지 밥상을 흘낏 흘끗 쳐다보았다.

어머니 눈치가 무서워 나는 생선비린내가 배어 있는 무와 김치를 밥에 얹어 먹다 보면, 아버지는 딸들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고등어 한 첨을 밥그릇에 슬쩍 얹어주셨다.

언젠가 여동생 집에 다니러 갔는데, 저녁밥 상위에 고등어조림이 놓여 있었다. 시장에 가서 고등어만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필히 사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 주셨던 것처럼 하나는 고추장을 풀어 무 넣고 조림을 하고, 다른 것은 고운 소금을 살짝 끼얹어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기름에 튀긴다고 하였다.

밥그릇을 앞에 두고 나와 동생은 아버지에 얽혀 있는 고등어 이야기에 수다를 떨다 보니, 그 사이 밥그릇을 다 비운 조카들은 고등어가 올려지는 날이면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다 안다며 웃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여형제들은 유난히 고등어를 좋아하고 만드는 조리법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그것은 고등어 맛을 떠나서 어머니 몰래 한 첨씩 떼어 이 딸 저 딸에게 맛이나 보라며 수저 위에 얹어 주셨던 아버지 사랑 때문이리라.

동생은 '고등어 살점은 자식들에게 나눠 주시고 정작 아버지는 무얼 드셨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김치나 깍두기를 드시지 않았겠느냐고 하니, 동생은 접시를 들어 남아있는 김치와 무 조각, 찌꺼기 국물을 밥 위에 쓸어내려 비벼 한술 떠먹는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셨다며.

스무 살 시절에 난 아버지를 외면한 채 지낸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어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반항하고 친척집에서 지냈었다. 섭섭했던 마음을 아주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동생은, 그때 내가 아버지를 미워했던 일을 기억해 냈는지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만 생각하며 오늘처럼 그리워하잖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를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입니다"라는 소설'가시고기'를 읽으며 아버지를 미워했던 나는 얼마나 후회하며 용서를 청했는지 모른다.

그 마음이 저 세상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달되었을까. 우리 집 밥상 위에 놓인 고등어 살점은 내 몫이다. 조린 국물에 있는 김치와 무를 넣고 비벼먹는 남편은 내 어린 시절 아버지 그대로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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