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맛
엄마 맛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01.0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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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새해가 시작되면 유난히 엄마가 그립다.

신정에는 친정집에서 설날에는 시댁에서 보내기로 남편과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잘 지켰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새해가 되면 고향 쪽으로 목을 빼고 그리워만 한다. 고향의 맛이라도 보고 싶어 셋째 언니에게 전화했다. 감태 파래 김치가 먹고 싶다 했더니 안 그래도 담아 두었다며 월요일에 택배로 보낸다 한다. 언니는 막내인 내가 안쓰러웠던지 엄마 대신 뭐든지 해 줄 테니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전화만 하라고 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전화를 한다.

겨울이면 파래 김치 하나면 그만이어서 늘 밥상에 올린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파래는 바위에서 자라는 파래이고, 향은 강하지만 질감이 두툼하다. 주로 무를 채 썰어 새콤달콤 무쳐 먹는다. 난 파래보다는 감태 파래를 좋아한다.

감태 파래는 바닷물이 들었다 빠졌다 하는 갯벌에서 자라는데, 매생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매생이보다 굵고 색깔도 약간 초록을 더 띠고 있다. 매생이는 익혀 먹는 것이고, 감태 파래는 집 간장으로 간을 해서 생으로 김치를 담그면 쌉쌀한 맛이 난다. 그 맛과 향에 빠지면 먹지 않고는 못 견딘다.

또 산 파래라는 것이 있다. 아주 추운 한겨울에 잠깐 나오는데, 녹색이 아닌 갈색 파래로 된장에 무쳐 대나무 가지에 돌돌 말아 구워 먹으면 파래의 향과 된장이 어우러져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추위를 많이 타 겨울을 싫어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다 겨울에 나온다. 파래, 매생이, 굴, 김…. 그래서 객지에 나가 있는 우리 형제들은 모임을 겨울에 한다. 다들 모여 어릴 적 엄마가 해 주셨던 음식들을 해먹는데,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보다는 못하지만, 향수를 달랠 수 있다고 말하며 다음 겨울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어릴 때부터 먹어보던 음식은 그 사람의 역사이고 문화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정말 충격적인 일을 접했다. 자취를 하는 작은아이가 집에 와서 언니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된장국이 먹고 싶어서 된장을 넣고 두부만 썰어 넣었는데 맛이 안 났단다. 그래서 거기에 딱 하나 감미조미료를 첨가하니 엄마 맛이 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엄마 안 계실 때 엄마 맛 된장국이 먹고 싶으면 전화를 하라고 한다. 자기가 얼마든지 끊여줄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으며 웃기는 했지만 노래 가사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였다. 직장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감미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을 식탁에 올리고, 인스턴트로 맛을 대신하면서도 나는 어릴 적 엄마의 맛을 좇아 공수해 먹었으니, 반성에 반성을 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호텔 주방장이 인터뷰에서 "요리의 맛은 주방장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자연과 엄마 손끝이 어우러진 맛을 그는 알지 못했나보다.

구제역 때문인 가축 매몰지가 우리 지역에도 많다. 가축이 부패하면서 지하수로 흘러들어 가 먹을 물을 위협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또 일본의 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바닷물이 오염되어 해산물을 먹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마음 놓고 먹을 먹을거리도 점점 없어져 간다. 그래서 더욱 고향과 엄마의 손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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