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22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주머니
우리네 소박한 소망 허리춤에 차고



한복을 입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불편한 것이 한가지 있는데 돈이나 손수건 등 작은 소지품을 넣을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복을 입으면 따로 만든 '주머니'를 허리에 차거나 손에 들고 다녔다. 우리 한복에는 남성들이 입는 조끼의 주머니를 빼고는 물건을 넣고 다닐 것이 없어서 생겨난 것이 주머니가 아닐까 생각된다. '주머니'는 사전을 찾아보면 '돈이나 필요한 물품을 넣기 위해 헝겊이나 가죽 따위로 만들어 끈을 꿰어 허리에 차거나 들게 된 물건'이라고 풀이돼 있다. 주머니 문화가 발전하면서 모양도 달라지고 보기 좋은 장식으로 변화를 가져와 '복주머니'까지 생겨났다. 그래서 주머니에 행복과 건강을 추구하는 오래 살게 해달라는 '목숨 수(壽)'자와 복을 많이 받자는 '복복(福)'자, 건강을 상징하는 '편안 할 강(康)'자 등을 색색의 수로 놓아 멋을 냈다. 조선시대 신분차이에 따라 다르며 궁주머니·여염주머니로 나눠 우리 조상들은 주머니를 통해서 복을 담고 복을 간직하는 뜻으로 주머니를 통틀어 '복주머니'라 했고 허리에 차고 다니면 복을 받는 것이라 여겼다. 주머니의 이름은 고장에 따라 '조마니', '조마이', '주머이', '주먼지'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주머니는 그 이름만큼 종류도 많았다. 가장 기본적으로 쓰였던 두루주머니와 귀주머니, 바늘주머니, 거울주머니, 안경주머니, 붓주머니, 노리개주머니, 장도주머니, 부싯주머니, 돈주머니 등 수없이 많다. 두루주머니는 아가리에 잔주름을 잡고 두줄의 끈을 마주꿰어 만든 작은주머니인데 주머니를 폈을때 위는 모가 지고 아래는 둥근데 끈을 졸라매면 입이 오므라들어서 둥글게 된다. 귀주머니는 네모지게 지어서 아가리로부터 세골로 접어 아래의 양쪽으로 귀가 나오게 만든 주머니다.

조선시대에 주머니를 많이 찼는데 차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저마다 달랐으니 크게 나누면 궁주머니와 여염주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귀주머니의 경우 아가리에 육모 주름이 잡힌것이 궁주머니고, 세모주름이 잡혔으면 여염주머니였다고 한다. 궁주머니는 부금, 곧 금박을 올리고 수를 놓고 매듭과 천이 호화로웠으며, 여염주머니는 간소하고 단아하였다. 같은 궁주머니라도 왕의 주머니는 옥색에 십장생을 수놓았으며, 다른 왕족들은 간소했다. 황색은 평민이 쓸수가 없었으나 장가 가는날 하루는 신랑에게 쓸수가 있었다. 신분에 따라 주머니에 구별이 있듯이 남녀에 따라 구별이 있었다.

여자의 것은 비단이나 화려한 천을 사용해 만들었으며, 주머니에 노리개를 달거나 청·홍실로 수를 놓아 아름다웠고 남자의 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밝은 단색으로 만들어 소박했다.

신랑이 하고가는 황색주머니 속에는 아홉알의 팥과 씨가 박힌 목화 한송이를 넣어 아홉아들과 딸하나를 낳아 주십사하는 소망을 기원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런 주머니도 시대의 발달에 따라 각양 각색의 옷이 만들어져 옷마다 호주머니가 달려있어 한복외에는 복주머니를 허리춤에 꿸일도 없어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